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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칼럼] 대통령의 지지율/곽인찬 논설위원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들의 사랑은 극진한 데가 있다. 치매로 오랜 병고에 시달린 끝에 2년 전 사망했을 때도 추모 열기가 뜨거웠다. 미국 ABC방송에 따르면 레이건은 재임(1981∼89년) 중 평균 57%의 지지율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1년에 조사한 지지율은 64%로 더 높게 나왔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변함없는 그의 인기 비결은 뭘까.

레이건이 1981년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미국 사회는 축 처져 있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그로기 상태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제2차 오일 쇼크와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은 마무리 펀치였다. 인질구출 특명을 받고 투입된 특공대가 악천후 속에 헬기와 수송기가 충돌하는 바람에 인질을 구하기는커녕 대원 8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도 있었다. 망신도 보통 망신이 아니었다.

레이건과 노대통령은 대조적

지미 카터를 누르고 백악관을 차지한 레이건은 풀 죽은 미국 사회에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대외적으로는 ‘악의 제국’ 소련을 상대로 무한 군비경쟁에 착수했다. 힘의 논리를 앞세운 레이건의 전략은 결국 소련 해체와 베를린 장벽 붕괴로 이어지면서 역사의 물줄기를 사회주의 패배, 자본주의 승리로 돌려놓는다.

대내적으로 레이건은 세금을 깎고 규제를 푸는 이른바 레이거노믹스 정책을 시종일관 밀어붙였다. 노동정책도 원칙을 고수했다. 불법파업을 벌인 항공관제사 1만1300여명을 한꺼번에 해고시키면서 레이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규제완화, 즉 디레귤레이션(De-regulation)과 노동정책에 관한 한 레이건은 대서양 건너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와 쌍벽을 이뤘다.

미국인들은 레이건에 환호했다. 패배주의는 순식간에 레이건식 낙관주의로 대체됐다.

레이건은 ‘그레이트 커뮤니케이터(Great Communicator)’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뛰어난 설득가’였다. 반대파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대단했다. 당시 상·하원은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었으나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제출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감세법안은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여유만만한 유머도 레이건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1984년 재선 TV 토론에서 그의 고령(당시 73세)을 문제 삼으려는 월터 먼데일 후보(56세)에 대해 레이건은 “나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상대방의 젊음과 경험 미숙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먼데일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고령과 건강 이슈를 일거에 해결한 고차원적인 위트가 아닐 수 없다.

레이건의 인기는 민심의 흐름을 읽는 정책의 일관성과 뛰어난 설득력, 유머로 귀결된다. 높은 인기는 다시 정책의 추동력으로 작용했다. 선순환이다.

바닥 인기론 어떤 정책도 실패

노무현 대통령은 인기를 초월한 지도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지방선거 참패에 대해서도 그는 ‘민심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며 지나치게 대범한 자세를 보였다. 그 결과 지지율은 속절없이 떨어졌다.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지니 어떤 정책을 내놔도 힘이 없다. 국민 열 명 중 여덟, 아홉이 반대하니 어떤 정책인들 먹혀들겠는가.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야인(野人) 노무현은 꽤 멋있어 보였으나 인기 최악의 대통령 노무현은 스스로 국정 수행의 장애물이 됐다. 이젠 그냥 노대통령의 정책이니까 싫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악순환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여야에서 누가 대권을 꿈꾸든 먼저 레이건·노무현 사례를 꼼꼼히 연구하기 바란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은 정책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변수다. 민심에 영합하는 약삭빠른 정책도 문제지만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은 더 큰 문제다.

TV에서 얼굴만 봐도 즐거운 대통령,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