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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칼럼] “이과수 세미나 좋으십니까?”/곽인찬 논설위원



“배 아프세요?”라고 묻는다면 굳이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고공비행을 멈추지 않는 일부 공기업·공공기관의 임금이 배 아픈 것은 사실이지만 인재 활용 측면에서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한 염려도 섞여 있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몇몇 금융 공기업 등의 연봉이 상식 밖이라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평균 연봉 8600만원을 받는 산은을 필두로 한국투자공사-수출입은행-증권예탁결제원이 7000만원을 넘어섰다.

상대적 박탈감 국민들 분통

연봉 논란이 일 때마다 정부는 혁신을 촉구했고 공기업들은 마지못해 부응하는 시늉을 했다. “급여 일부를 반납하겠다”는 기관장도 있었다. 공기업들은 왜 우리만 못살게 구느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예컨대 시중은행들과 비교할 때 국책은행들의 연봉이 높은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공(公)기업’이기 때문이다. 사기업들은 정글 속 경쟁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지만 공기업들은 그렇지 않다. 거칠게 표현하면 공기업들은 법으로 수익을 보장받는다. 경쟁 없는 독과점 시장에서 손쉽게 초과이윤을 올리는 것도 눈에 거슬리는데 그렇게 번 돈을 인건비와 복지비에 흥청망청 쓴다면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초과이윤은 독과점 시장에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돌려주는 게 도리다.

사기업은 다르다. 삼성전자는 피 말리는 경쟁을 통해 메모리 반도체 부문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실적이 좋으면 연말 성과급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그 돈이 정글에서 피땀 흘려 획득한 전리품이란 걸 알기 때문에 부럽기는 할지언정 배가 아플 건 없다.

공기업·공공기관이 사기업과 같은 경쟁을 거쳐 연봉 잔치를 벌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국투자공사와 증권예탁결제원이 국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아 그렇게 많은 연봉을 지급한다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건 공기업·공공기관 직원들이 더 잘 안다. 그래서 배가 아픈 것이다. 오죽하면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마저 “국민의 세금·부담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여건에서 근무하고 보수도 좋아 국민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을까.

여론이 뭐라 하든 공기업들의 배짱은 갈수록 두둑해지고 있다. 두 눈 부릅뜨고 방만한 경영을 감시해야 할 감사 20여명이 ‘혁신 포럼’ 세미나를 위해 남미 이과수 폭포로 떠났다고 한다.

이런 배짱에는 두가지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먼저 참여정부가 공기업 민영화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민영화는 곧 경쟁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맨 먼저 군살을 빼 몸을 민첩하게 만들어야 한다. 민영화에 재시동을 걸지 않는 한 자발적인 다이어트는 기대하기 힘들다.

공기업 민영화가 유일한 대안

또 하나는 정부·정치권-공기업 커넥션이다. 공기업 수장과 감사 자리를 전직 고위관료와 정치인들이 꿰차고 있으니 개혁은 늘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전직 관료가 공기업으로 옮길 때마다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먼저 노조가 들고 일어선다. 건물 외벽에 플래카드가 나붙고 노조원들이 새 기관장의 출근을 방해한다. 그러다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소동이 잠잠해진다.

새 기관장과 노조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공기업의 임금과 복지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혁신을 요구하는 정부의 태도도 느슨하기 짝이 없다. “얼마 있다 내가 갈 자리인데…”하는 심사가 아닐까. 굳이 노조 눈밖에 나서 좋을 게 없다는 식이다.


유능한 젊은이들이 공기업으로 몰리고 있다. 좋은 직장에 인재들이 몰리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국가 경제 차원에서 이 같은 쏠림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지는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