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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칼럼] 쏠림공화국/곽인찬 논설위원



새끼돼지를 능지처참하는 퍼포먼스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군 부대 이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새끼돼지가 부대를 이천으로 옮기라고 국방부를 사주(使嗾)라도 했단 말인가, 왜 이유 없이 어린 돼지의 생명을 앗아가나. 모질다. 생각이 한쪽으로 쏠린 나머지 다른 건 거들떠보지도 않은 결과다.

은행 대출도 주택·中企로 몰려

쏠림이 꼭 나쁜 건 아니다. 좋은 쪽으로 쏠리면 엄청난 힘을 낸다. 외환위기 때 자발적인 금 모으기 운동과 2002년 월드컵이 좋은 예다. 그러나 나쁜 쪽으로 쏠리면 자주 상식과 충돌한다.

우리 경제도 쏠림이 골칫거리다. 1년 전 이맘 때쯤 재경부 고위 관료들은 “쏠림이 문제”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몇몇 환투기꾼이 국내 외환시장을 쥐락펴락하면서 환율이 급락하던 시절이다. 이들이 달러를 팔 낌새만 보여도 나머지가 우루루 한 방향으로 쏠리는 바람에 환율은 뚝뚝 떨어졌다. 환율 쏠림은 올 들어 하루 외환 거래액이 300억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시장이 커지자 쏙 들어갔다.

그 바통을 은행이 이어받았다. 요즘 금융계의 화두는 주택과 중소기업에 쏠린 대출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로 모아지고 있다. 집값이 오를 땐 너나없이 주택담보대출에 열을 올리더니만 청와대 서슬에 놀랐던지 갑자기 문턱을 높였다. 대신 돈이 남아돌자 중소기업들에 인심을 쓰기 시작했다. 대출이 쏠리면 리스크가 커지는 건 당연하다. 주식투자로 치면 한 바구니에 계란을 너무 많이 담은 꼴이다. 결국 윤증현 금감위원장이 나서서 경고 휘슬을 불었다.

이제 ‘쏠림 바이러스’는 해외펀드로 옮아가고 있다. 중국과 인도, 베트남 증시가 전례없는 열기에 휩싸인 가운데 해외펀드 차익에 물리던 세금까지 없앴으니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반면 국내펀드는 찬밥이다. 국내펀드를 깨서 해외펀드로 옮겨 타는 이들도 있다. 제로섬 게임이다. 벌써 해외펀드 쏠림이 국내 증시의 성장력을 갉아먹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소리가 나온다.

세계 증시가 ‘비이성적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건 누구라도 짐작한다. 그렇다면 과거 IT 버블 붕괴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데, 지금 교훈 들먹이다간 왕따 당할 분위기다. 아무래도 태풍 전야의 고요처럼 불안하지만 원만한 대인관계 유지 차원에서 말을 아끼겠다.

참여정부에서 정책 쏠림의 원조는 부동산이다. 하늘이 두쪽 나도 집값을 잡으라는 지상명령에 의거, 한쪽만 보는 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작전지도를 펴놓고 마치 고지를 점령하듯이 돌격 앞으로, 밀어붙였다. 세금 폭탄도 쏘아댔다. 부상자들은 애써 무시했다. 정권 5년차에야 간신히 집값이 잡힐 기미가 보인다. 드디어 정책이 성공한 걸까. 천만에 말씀. 집값이 정권 출범 초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실패다. 들쑤셔놓기만 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게다. 백보 양보해 성공이라고 쳐도 상처뿐인 영광일 뿐이다.

여론 편승한 난도질 없어야

김승연 한화 회장의 보복 폭행을 놓고 김성호 법무장관이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분위기가 험악해 김 회장의 차남이 왜 어떻게 누구한테 맞았는지 감히 물어볼 엄두가 안 난다.

공기업 감사들이 혁신 세미나차 남미에 들렀다가 이과수 폭포를 구경하고 온다니까 온 나라가 들끓었다. 시민단체의 미꾸라지 세례를 피해 공항을 빠져나오다가 던진 감사들의 몇 마디는 구차한 변명으로 취급됐다.

김 회장과 감사들이 한 짓을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해명 기회조차 주지 않고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양 여론에 편승해서 일방적으로 난도질하는 건 그르다는 얘기다.

쏠림은 부화뇌동을 촉발하고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그 점에서 쏠림은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공공의 적이다.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