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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칼럼] 그 많던 말똥은 다 어디 갔을까/곽인찬 논설실장



“교통정체와 높은 보험료, 잦은 교통사고, 공기 오염 물질과 유독성 배출물이 개인의 건강은 물론이고 환경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자동차 얘기인가? 아니다. 100년 전 뉴욕의 주요 교통수단이던 말(馬)과 말똥에 관한 얘기다. 20세기 초엽 뉴욕엔 말 20만마리가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당시 뉴욕의 말들이 쏟아낸 배출물은 하루 자그마치 2000t이 넘었다. 그 많던 말똥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가긴, 거름 산이 도시 곳곳에 형성됐다. 어떤 건 높이가 20m나 됐다고 한다. 여름이면 악취가 코를 찔렀고 비라도 올라치면 가관이었다. 만약 그 때도 지금처럼 지구 온난화를 우려하는 환경운동이 있었다면 말똥은 틀림없이 공공의 적이 됐을 것이다. 말똥이야말로 이산화탄소에 비해 온실가스 효과가 25배나 높은 메탄 배출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말도 말이지만 소나 양처럼 되새김질을 하는 반추동물 역시 지독한 환경오염원이다. 이들이 트림하고 방귀를 붕붕 뀔 때마다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운송수단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50%나 많다. 이론적으로는 소고기버거 대신 캥거루버거를 먹는 게 온실가스를 줄여 인류의 생존을 이어가는 고귀한 행동이 된다. 왜냐하면 캥거루의 방귀에는 메탄가스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의 말똥을 단숨에 해결한 것은 다름아닌 자동차였다. 기름만 넣으면 싱싱 달리는 자동차가 나오자 뉴요커들은 포드의 모델 T를 앞다퉈 구입했다. 자동차는 유지비가 덜 드는 데다 똥도 치울 필요가 없는 환경의 구세주였다. 그랬던 자동차가 지금은 다시 대기 오염의 주범으로 지탄을 받고 있으니 자동차 팔자 모를 일이다.

일부 삐딱한 이들은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 대재앙을 인류 최후의 날로 묘사하려는 종말론적 환경운동을 비이성적 과열로 비판한다. 사실 지구 온난화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니 최악의 시나리오가 횡행할 수밖에 없다. 빙하가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바닷물이 집을 덮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떤다. 지금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기후회의 개막식에서 폭풍과 사막으로 뒤덮인 지구 최후의 날이 상영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은 “현대의 인류보존운동에 수호성인이 있다면 전직 미국 부통령이자 최근(200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앨 고어가 바로 그 성인일 것”이라고 비꼰다. 레빗은 ‘괴짜경제학’이라는 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슈퍼괴짜경제학(SuperFreakEconomics)’이란 후속편에서 고어가 출연한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을 비판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플로리다주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는 식의 겁주기가 과연 과학적으로 타당하느냐는 것이다.

레빗은 ‘지구공학(Geoengineering)’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인 거부감만 없애면 얼마든지 싼 값에 지구 온도를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레빗은 화산폭발 때 나오는 이산화황 가스를 인공적으로 성층권에 뿌리는 기발한 방안을 제시한다. 햇빛을 차단하는 이산화황의 냉각 효과는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의 대폭발 때 충분히 검증됐다는 것이다.
이산화황을 시속 160㎞ 강풍이 부는 성층권으로 올리는 게 문제인데 레빗은 29㎞짜리 ‘하늘에 닿는 호스’를 설치하거나 기존 화력발전소의 굴뚝을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물론 자동차가 말똥을 없앤 것처럼 어느날 갑자기 이산화탄소를 해결할 신통한 발명품이 불쑥 나타나면 더 좋고.

고어가 볼 때 지구공학은 오염을 오염으로 치유하려는 위험천만한 ‘헛소리’이며 회개할 줄 모르는 인간 오만의 극치다. 정공법은 역시 겸손한 자세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인데 여기엔 천문학적인 비용과 덜 쓰고 덜 타고 덜 먹어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인류의 궁극적인 선택은 과연 고어일까 레빗일까.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