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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IFRS 시행 1년 남았다/곽인찬 논설실장



지난 주말 서울 회기동 경희대에서 열린 한국회계학회 겨울학술대회에 다녀왔다. 참석자들의 최대 관심은 역시 IFRS. 일반인에겐 아직 낯선 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즉 국제회계기준을 놓고 학계·기업의 회계 전문가들은 골치를 앓고 있다.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IFRS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난감한 표정이고 기업의 회계 담당자들은 새 기준을 적용한 시뮬레이션 작업에 지친 모습이었다.

로드맵대로라면 상장사들은 2011년부터 IFRS에 따라 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한다. 회계의 근본을 뜯어고치는 일인만큼 1년 남짓 기간이 남았지만 넉넉한 건 아니다. IFRS는 연결재무제표를 기본으로 한다. 지금처럼 모회사·자회사 따로가 아니라 둘을 하나로 묶은 재무제표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자회사라도 수십개 회사를 관통하는 일관된 회계 원칙에 따라 재무제표를 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IFRS는 원칙중심(Principle-based) 회계라는 점에서 규칙중심(Rule-based)의 기존 회계와 큰 차이를 보인다. 원칙중심이란 큰 틀만 제시할 뿐 세세한 판단은 기업 재량에 맡긴다는 뜻이다. 기업마다 재량권을 달리 행사할 경우 과세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같은 이익을 내고도 회계에 따라 세금 액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기업회계와 세무회계의 괴리에 따른 납세순응비용 증가도 신경 쓰이는 일이다. 현행 법인세법은 개별제무제표를 기초로 각 회사에 세금을 매긴다. 결국 기업들은 주주들에게 보일 연결재무제표와 세무당국에 제출할 개별재무제표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인력·짜증 등을 통틀어 납세순응비용이라고 한다.

순응비용을 줄이려면 만국 공통의 회계언어인 IFRS 도입에 발맞춰 세법을 바꾸는 게 순리로 보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금 정부의 관심은 온통 세수를 늘려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데 쏠려 있다. 이런 판에 법인세율은 내년부터 현행 22%에서 20%로 떨어진다. 나라 곳간 채울 일이 갈수록 아득하다. 정부가 재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내년부터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를 강행한 것은 이런 사정이 있다. 만약 IFRS가 세수 증대에 기여한다면 정부는 세법 개정에 늑장을 부릴 공산이 크다. 실제 스코틀랜드회계사회가 영국·이탈리아·아일랜드 기업들의 IFRS 적용 실태를 분석한 자료(2008년)에 따르면 3개국에서 모두 순이익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기업들도 세금이 늘면 어쩌나 걱정이 크다.

중소기업의 반발도 만만찮다. 사실 대기업들은 이미 상당수가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는 등 IFRS가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러나 전문인력과 비용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엄두를 못내고 있다. 게다가 IFRS는 기업의 재무 상태를 속속들이 드러내니 반가울 까닭이 없다. 일부에선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소기업에 대한 IFRS 적용 시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회계기준이 정부의 친서민 정책에 편승한 정치적 이슈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세계화 시대에 IFRS 도입은 불가피하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삼성전자의 재무제표는 마땅히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회계언어로 쓰여야 한다. 회계 선진화의 1차 충격은 외환위기였다. 이때 돈줄을 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회계 투명성을 높이라는 압력을 넣었다. 한국회계기준원 설립(1999년)도 그 일환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투명성이 낮은 국가로 분류돼 재무제표에 대한 신뢰를 얻지 못했다. 회계판 코리아 디스카운트인 셈이다. 2차 충격은 IFRS 도입이다.
1차와 달리 자발적 선택이지만 충격은 더 넓고 크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의 발표(2007년)로 그 첫걸음을 뗐고 이제 마무리 준비단계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남은 1년을 회계 선진화로 가는 밑거름으로 잘 활용해야 한다.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