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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공무원 목에 방울 달기

[이재훈 칼럼] 공무원 목에 방울 달기

공무원연금 개혁의 역사는 한마디로 '개악'의 역사다. '용두사미'라는 평가는 과분할 정도다. 개혁의 대상인 공무원이 개혁을 주도한 탓이다. 1960년 이승만정부 때 시작된 공무원연금은 1993년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이후 1995년, 2000년, 2009년 세 차례의 개혁을 거치게 됐다.

1995년에는 공무원이 내는 연금보험료를 쪼끔 인상하고 60세부터 연금을 받도록 바꿨다. 그러나 60세 규정은 1996년 이후 공무원이 된 사람에게만 적용했다. 불이익을 후배 공무원에게 전가한 것이다. 2000년에는 보험료를 조금 올리는 대신 공무원연금 적자가 발생하면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다는 조항을 밀어넣었다. '밑빠진 공무원연금에 세금 퍼붓기'가 공식화된 것이다.

이명박정부 때인 2009년의 개혁은 외관상 폭이 컸다. 당시 행정안전부는 "내는 돈은 27% 늘리고 받는 돈은 25% 줄여 5년간 연금적자 보전금이 51% 줄어들 전망"이라고 호언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보험료율을 올리고 연금액을 소폭 삭감했지만 10년 이상 근속자는 삭감이 없도록 했다. 연금액 산정기준을 바꾸면서 장기 재직자는 오히려 연금이 올라갈 여지까지 생겼다. 연금지급 연령을 65세로 높였으나 대상을 2010년 이후 신규 임용된 공무원으로 한정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사이 급여 격차는 1.4배에서 2배 수준으로 더 벌어지게 됐다. 정부의 호언과 달리 개혁 이후에도 연금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당시 정부는 처음으로 민관합동 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를 구성해 연금 개혁을 논의했다. 그런데 여기에 공무원 단체대표가 무더기로 참여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를 비롯한 5개 단체 대표와 이들이 추천한 전문가 2명 등 위원회의 과반수를 이익단체가 차지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다. 위원회 구성이 이처럼 엉터리가 된 데는 개혁을 무력화하고 제 밥그룻을 지키려는 공무원의 의도가 깔려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제 네번째 공무원연금 개혁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개혁을 정부가 아닌 여당이 주도하고 있다. '셀프 개혁'의 한계를 감안하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반발과 저항은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 공무원노조는 한국연금학회 주최 토론회에 쳐들어가 훼방했다. 연금학회 사무실을 점거하고 괴롭히자 김용하 학회장이 사퇴하기까지 했다. 지난 주말에는 1만여명이 서울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했다. '떼법'에 의존하는 행태는 공무원노조라고 다를 바 없다.

공무원노조는 '밀실 개혁'을 규탄하고 있다. 이해당사자를 논의에서 철저히 배제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낮출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을 공무원 수준으로 '원상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라 살림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태연히 국가재정을 거덜낼 소리를 하니 놀랍기만 하다. 일본의 경우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보다 평균 20% 많은데 내년부터 이를 국민연금과 같은 수준으로 삭감할 예정이다. 낸 돈의 2.3배나 받는 공무원연금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공무원노조는 결국 연금개혁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마저 '개악'하자는 터무니없는 대안을 제시하는 이들과 연금개혁을 논의할 이유가 있겠나.

공무원들의 드센 반발에 여당인 새누리당 내부의 기류도 변하고 있다. 최근 공무원 출신 의원들이 '공무원 옹호론'의 군불을 때고 있어 영 불길하다. "공무원을 매도해서는 안되며 노조 입장을 연금개혁에 반영할 부분도 적지 않다" "이 문제를 왜 여당에서 총대를 메야 하는가"는 등의 발언이 비공식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임금 추가 인상과 퇴직수당 인상이니, 하후상박(下厚上薄) 반영이니 하는 '당근책'이 벌써부터 솔솔 흘러나오는 것은 또 뭔가. 개혁의 의지가 벌써 쇠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공무원과 등져도 공무원연금 개혁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국민은 박수를 쳤다. 그러나 정부는 물론 여당에서도 총대를 메고 개혁을 밀고 나가는 이는 눈에 띄지 않는다. 연금개혁이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가 돼서는 곤란하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