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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증세가 그리 쉽나

부가세로 파국 맞은 박정희.. 불황에 '세금 더걷기'는 위험

[이재훈 칼럼] 증세가 그리 쉽나

내리기도 쉽지 않지만 올리기는 정말 어려운 게 세금이다. 무릇 증세에는 조세저항이 따른다. 규모와 범위가 클수록, 불황으로 민생이 팍팍할수록 저항의 강도는 커져 나라를 뒤엎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증세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수렁 속에 빠뜨리기도 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의 증세는 박정희 정권 때인 1977년 7월 시행된 부가가치세다. 부족한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6년간의 준비 끝에 도입한 부가세는 한 방에 10%라는 고율을 매긴 탓에 엄청난 국민적 반발을 불렀다. 시장 상인들의 철시(撤市) 사태가 줄을 이었고 이듬해인 1978년 12월 10대 총선에서는 여당인 공화당이 야당인 신민당에 참패했다. 부가세가 여당의 패인으로 지목되며 도입의 주역인 김정렴 대통령비서실장, 남덕우 경제부총리, 김용환 재무장관이 자리를 물러나야 했다.

2차 오일쇼크와 물가급등, 경기침체에 '세금폭탄'까지 겹치자 민심은 폭발했다. 1979년 10월 부마(釜馬)항쟁 때는 자영업자들이 대거 가담해 "부가세를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세무서에 불을 질렀다. 박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법정에서 "부마사태는 체제에 대한 반항, 정책에 대한 불신, 물가고와 조세저항이 복합된 민란이었다"고 술회했다. 부가세 도입이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불렀다는 평가가 그래서 나온다.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대혁명, 13세기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도 가혹한 증세에 대한 조세저항의 결과다. 조세저항만큼이나 무서운 것은 경제침체라는 것을 일본이 보여주고 있다. 무한정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리겠다는 아베노믹스가 지난 4월의 소비세 인상(5%→ 8%) 이후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소비와 투자가 꽁꽁 얼어붙어 일본 경제가 2분기째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아베 신조 총리가 소비세 추가인상을 연기한 것을 보면 국민이 지갑을 닫는 것이야말로 위력적인 조세저항이라 할 수 있다. 경기부양과 세수확충은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부가세, 소비세 같은 '서민증세'가 아니라 이른바 '부자증세'면 문제없지 않겠냐고? 노무현정부는 2005년 집값 잡겠다며 고가 주택에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려다 혼쭐이 났다. '세금폭탄' 논쟁이 일면서 집값은 치솟았고 고소득층뿐 아니라 서민들도 분노했다. 종부세의 실제 부과대상은 전체의 1.3%에 불과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인기는 곤두박질치고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이후 재·보선과 지방선거에 이어 종국에는 대선에서도 패했다.

지난해 8월의 세법개정안 파동은 우리 사회가 증세에 대해 얼마나 완고한지를 입증했다. '거위의 깃털을 고통 없이 뽑듯이' 중산층에 월 1만원만 추가로 과세하겠다는 방안에 여론은 들고일어났고 박근혜 대통령은 발표 사흘 만에 거둬들였다. 그때의 파동은 복지를 위해 내 호주머니 터는 것은 싫다는 민심을 보여준 셈이다.

정치권과 정부가 한창 증세 논쟁을 벌이고 있다. 모두가 세금 무서운 줄, 아니 증세에 대한 민심이 무서운 줄 모르는 것 같다. 야당은 이명박정부 때 법인세 인하, 즉 '부자감세'를 원래대로 환원하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재원을 다 메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부자'라는 인식도 문제지만 이런 불황에 법인세를 올리자는 주장은 어이가 없다. 지금 세계 각국은 경제를 살리겠다며 법인세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소비세를 올리는 와중에도 법인세는 단계적 인하 수순을 밟고 있는 일본 아베정부는 바보란 말인가. 기업활동이 살아나야 경제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물론 담뱃세, 지방세 인상으로 우회증세를 시도하고 있는 정부·여당의 모습도 보기 고울 리가 없다.

진짜 참을 수 없는 것은 대책 없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재정에 구멍을 내놓고 세금을 더 거둬 메우자는 정치권의 무책임한 발상이다. 엉터리 상품을 공짜라며 나눠주고는 비싼 청구서를 들이대는 격 아닌가.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은 재원을 고려해 선별적인 무상급식, 무상보육을 원했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여당의 담뱃세 인상과 야당의 법인세 인상을 동시에 수용하는 이른바 '빅딜설'이 솔솔 흘러나와 국민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런 식의 타협은 국민과 경제를 거덜내는 행위다. 정치권은 '세금은 곧 정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새겨봐야 할 것이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