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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최저임금의 역설' 완결편

해고 위기 내몰린 경비원들.. 공동체 정신 발휘할 수 없나

[이재훈 칼럼] '최저임금의 역설' 완결편

요즘 아파트 경비원은 만능 해결사다. 방범·안전관리 같은 본연의 업무는 물론 택배·우편물 수령, 분리수거, 주차관리와 주민 사이의 소통업무를 맡고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경비원은 깨진 보도블록 수리나 복도의 전구 교체 등 웬만한 유지·보수는 척척 해내고 때로는 화단 가꾸는 정원사 일까지 한다. 그러나 정부는 박봉에 온갖 허드렛일을 다하는 경비원을 노동 강도가 덜한 '감시·감독직'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그래서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1988년 이후 30년간 경비원들은 적용에서 예외였다.

내년부터 감시·단속직이 최저임금의 100%를 적용받게 되자 또다시 아파트 경비원들이 대량 해고 위협에 놓였다. 일부 아파트 주민이 임금 상승으로 관리비가 오른다며 경비원 수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다. 현재 경비원들은 최저임금의 90%를 적용받고 있는데 이것이 100%로 높아지고,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 7.1%까지 더해지면 평균 120만원가량인 경비원 임금이 19%나 오르기 때문이다.

경비원이 비인격적 처우에 분신자살한 압구정 S아파트의 경우 이미 소속 경비원 전원에게 해고 통보를 했다. 경비원의 휴게시간을 늘리는 편법으로 임금을 묶어두거나 무인경비시스템을 강화하려는 아파트도 늘고 있는 모양이다. 전국 25만명 경비원 중 5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

결국 올 것이 오고 마는 건가. 고용 취약계층의 임금을 올려주니 오히려 고용불안이 닥치는 현실, 이른바 '최저임금의 역설'이다. 서민을 위한 정책이 서민에게 고통을 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고용관련 정책에 역설이 많다. 2009년 개정된 비정규직보호법에서 비정규직 근로자가 2년 이상 근속하면 의무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도록 했더니 기업들은 계약기간을 2년 미만으로 하면서 때가 되면 비정규직을 해고하곤 했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려 하자 골프장들은 캐디를 줄이거나 없애려 했다.

그런데 경비원의 역설은 우리에게 '데자뷔'다. 정부는 2007년부터 경비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70%)했다. 2012년에는 90%까지 높였다. 그때마다 경비원들은 감원 위협에 시달리고 "임금 안 올려도 좋으니 일자리를 잃지 않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2011년 말에는 아파트 경비원의 10%가량이 감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최저임금 100% 적용을 2012년에서 2015년으로 3년간 유예했던 이유다. 두 번이나 큰 풍파를 겪었는데 또다시 대량 해고 바람이라니 정부는 그동안 뭘 하고 있었나 모르겠다.

정부는 지난달 60세 이상 고령 경비원 고용에 23억원의 지원예산을 편성했다가 대상자가 3000여명에 그친다고 지적받자 1일 지원대상을 1만명가량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또한 해고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인 데다 민간의 고용문제에 정부가 계속해서 개입할 수 없는 노릇이다. 최저임금 적용을 더 미루거나 아예 하지 말자는 주장도 있으나 해결책이 못된다. 경비직을 마지막 임금 사각지대로 남겨두자는 것 아닌가. 이러고서 정부가 비정규직 처우개선이나 임금·소득 증대를 통한 경기활성화를 논할 수가 있겠나. 경비원의 95%가 비정규직이다.

경비원은 정년퇴직한 고령자의 마지막 직업이라고 한다. 해고 당하면 더 이상 다른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고용 취약계층이다. 임금 적게 줘도 이 일을 하려는 사람이 줄을 섰다고 하면 너무나 인심 각박한 소리다. 우리 사회가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정신을 보여줘야 할 때다. 경비원 임금 상승으로 아파트 주민이 추가 부담하게 될 관리비가 월 5000~7000원 되는 모양이다. 한 달에 커피 한두 잔 부담이니 감수할 만하지 않은가.

수많은 아파트가 경비원 수를 줄이고 무인경비시스템을 강화했다. 더 이상 해고할 여력이 없는 곳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무인경비보다 유인경비가 훨씬 주민 편익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충남 아산시가 최근 선문대 연구팀에 '아파트 유·무인 경비시스템 경제성 분석'을 맡긴 결과 유인경비 시 주야간 순찰, 환경미화, 시설물 유지·관리 등 혜택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경비원은 생활의 동반자라는 공동체 정신이 필요하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