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이재훈 칼럼] 중구난방 초이노믹스

'소득 주도 성장' 가능한가.. 백화점식 정책 나열 위험

[이재훈 칼럼] 중구난방 초이노믹스

정부가 경기를 살리기 위해 하루가 멀다하고 정책 수단을 쏟아내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일주일 전 "근로자 임금이 올라야 내수가 살아난다"며 기업에 임금 인상을 압박했다. 그는 "올해도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도 말했다. 최 부총리가 취임 초기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며 내세운 '소득 주도 성장'이 다시 수면위로 솟은 셈이다. 여야도 그의 발언에 맞장구쳤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민자사업을 활성화하겠다는 '한국판 뉴딜'정책까지 들고 나섰다.

최 부총리의 정책 행보는 어지러울 정도다. 연초에는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을 강조했다. 지난해에는 확장적 재정정책과 부동산 규제완화 등 단기적인 경기부양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근로·투자·배당소득 등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도 도입했다. 이런 굵직한 정책들은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하며 시행 효과도 시간을 두고 판단할 일이다. 그런데도 느닷없이 임금인상과 뉴딜을 외치며 기업을 압박하니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백화점식, 중구난방식 정책 쏟아붓기라는 비판도 쏟아진다. 정책 간의 상충도 문제가 된다. 예컨대 경기부양과 구조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지적이 있다.

최 부총리가 꽤나 다급했던 모양이다. 그럴만도 하다. 취임 7개월 동안 여러 가지 정책카드들을 내놓았지만 성과는 돋보이지 않고 경제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물가는 사실상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쳤고 생산, 소비, 투자, 수출 등 거의 모든 지표가 침체로 치닫고 있다. 그는 최근 내수침체와 디플레이션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임금 인상과 뉴딜은 그에 대한 처방이다. 하지만 이 많은 정책을 한꺼번에 밀어붙일 수 있는 건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장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 기업의 반발이 만만찮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국제노동기구(ILO)가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저성장의 원인을 소득불평등에서 찾아 2010년 제시한 담론이다. 임금을 올려 가계소득이 늘어나면 소비가 늘고 기업투자도 활발히 일어나 고용 창출,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듯한 내용이지만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약점이다.

최 부총리는 미국·일본의 예를 들며 임금인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대기업들에 임금인상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은 미국·일본과 판이하다는 지적도 비등하다. 주요국 중 '나홀로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미국이나 엔저 덕분에 수출대기업이 살아난 일본은 임금인상을 요구할 만도 하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실적 악화에 내몰리고 있다. 최고기업 삼성전자가 임금을 동결한 것이나 경영자총협회가 올해 임금인상률 권고치를 1.6%로 낮춘 것을 보면 알지 않겠나. 게다가 내수보다는 수출입에 의존하는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인건비 상승에 따른 제품 가격 상승과 경쟁력 약화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임금인상이 고용 축소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임금이 높아지면 사람을 덜 쓰게 되는 게 당연하다. 최저임금 근로자 256만명의 98%가 중소·영세기업에서 일하는 상황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중소기업·자영업 근로자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현정부의 '고용률 70%' 정책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기업들은 최근 정부 정책에 따라 배당을 늘렸다. 그러나 일회성 비용인 배당과 달리 임금은 한 번 인상하면 좀처럼 내릴 수가 없다. 정부의 닦달에 기업이 쉽사리 응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이 문제는 소모적인 논쟁만 야기하고 끝날 가능성이 커보인다. 더군다나 노사정위원회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해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임금·소득 문제는 여기서 논의가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옳다.
정부가 급한 마음에 정책을 이것저것 마구 건드리다간 어느 하나도 제대로 결실을 맺기 어렵다. 국민은 이제 정책의 난조를 지겨볼 여유가 없다. 최 부총리는 선택과 집중을 생각해야할 때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