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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유시민은 죄가 없다

보험료 인상시 역풍 불보듯.. '대체율 40%'는 국민의 선택

[이재훈 칼럼] 유시민은 죄가 없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던 여야가 엉뚱하게도 '국민연금 강화'까지 합의하는 것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국민연금의 명목소득대체율(40년 가입 때 생애평균소득의 몇 %를 연금으로 받는지 보여주는 비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올리자는 합의는 노무현정부 시절 단행했던 국민연금 개혁 내용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7년 국민연금 개혁을 관철한 주역인 유 전 장관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했다. 최고의 연금전문가이자 '연금개혁 전도사'인 유 전 장관의 첫 반응은 "소득대체율 50%는 택도 없다"였다.

'택도 없다'는 경상도식 표현에서 그가 이 사안을 얼마나 시니컬하게 바라보는지 실감할 수 있다. 유 전 장관은 어느 인터넷 팟캐스트에 출연해 " 명목소득대체율을 10%포인트 인상하려면 많은 돈이 든다"면서 "10년 전에 계산해 본 바로는 현행 9%로 돼있는 보험료율을 12.9%까지 올려야 된다"고 했다. 이만큼의 보험료 인상은 불가능하다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사실 유 전 장관은 국민연금 개혁 과정에서 숱하게 좌절을 맛본 사람이다. 개혁안은 정치권은 물론 국민적 반발에 부닥쳐 후퇴를 거듭했다. 노무현정부는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국민연금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2047년 국민연금 기금이 바닥 날 것이란 위기감에 시달렸다. 2004년에 보험료를 15.9%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60%에서 50%로 낮추는 법안을 추진했다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반대에 접어야 했다.

2006년 2월 취임한 유 전 장관은 보험료율을 12.9%로 인상하고 연금은 50%로 낮추되 65세 이상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는 절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대선을 앞두고 여론이 좋지 않은 개혁안을 굳이 밀고 가야겠느냐는 시각이었다. 국회에서 국민연금법안은 부결되고 기초노령연금법안만 가결되는 해프닝까지 나타나 유 전 장관은 사표를 내야 했다.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는 야당안이었고 정부·여당도 마침내 이를 수용했다. 현재의 국민연금이 '그대로 내고 많이 덜 받는' 구조로 귀결된 이유다. 국민연금은 그렇게 '용돈 수준' 연금으로 오그라들었고 그나마 고갈 시기는 2060년으로 연장됐다.

연금을 더 많이 주겠다는데 여론은 왜 들끓는 것일까. 요즘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20, 30대 젊은 층의 반발이 거세다. "미래 세대에게 다시 무거운 짐을 얹는 무책임한 국회의원들" "50% 안 줘도 좋으니 제발 연금 더 내라는 소리는 하지 마라"는 등 비판 일색이다. 정치권의 속셈을 뻔히 알고 있다는 얘기다.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려면 70년간 1700조원 돈이 더 필요한데 보험료 인상 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나. 한데 많은 국민들은 국민연금 보험료를 준조세로 인식하고 있다.

유 전 장관은 지난해 한 매체 인터뷰에서 국민연금을 강화하자는 주장에 대해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현재 국민연금의 수급자는 극소수고 대다수 국민은 여전히 돈을 내기만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료를 더 많이 내는 게 좋다'고 하면 통하겠는가." 국민연금은 당분간 이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연금 소득대체율은 42.1%로 우리와 별 차이 없으나 기여율은 19.6%로 우리의 2배를 넘는다.

국민연금 강화를 내건 야당이나 이를 받아준 여당이나 포퓰리즘에 매몰되긴 마찬가지다. 소득대체율 50%는 원래 공무원노조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물타기하기 위해 내세운 주장이다. 공무원노조 입장에서는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근접해야 안심할 수 있다. 지금처럼 격차가 심하면 언제든 두 연금 통합론이 다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107만 공무원의 눈치를 살피던 야당이 이 주장을 수용하는 바람에 2100만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대혼란에 빠질 지경이다. 소득대체율 40%는 분명 미흡하지만 국민이 선택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를 바꾸려면 먼저 국민에게 물어봐야 한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