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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요지경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감원 부를 것.. 파행 거듭하다 시한 넘겨

[이재훈 칼럼] 요지경 최저임금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 법정시한(6월 29일)을 또다시 넘겼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상습적으로 법정시한을 어기곤 했으니 별로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시한을 지켰던 지난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위원회는 최근 3개월 동안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해보지도 못했다. 법정시한인 지난달 29일 열린 전체회의는 사용자(경영계) 위원들이 불참을 선언해 파행했다. 최저임금 결정문에 월급을 병기하자는 제안에 반발한 것이다. 위원회는 이런 식으로 변죽만 울려왔다.

올해 최저임금 협상은 예년과 분위기가 판이하다. 경영계와 노동계 위원들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기 요구안만 고집하다가 정부 방침에 충실한 공익위원들이 막판에 절충안을 내면 노사 측 위원들이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절충안은 그대로 채택되는 것이 종래의 도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가 아예 협상을 주도하는 듯하다. 정부와 노동계가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뜻을 같이하고 경영계를 협공하는 모양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3월 "현정부 들어 최저임금을 연간 7%대로 올렸지만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내수를 살리려면 근로자들의 임금이 올라 소비를 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후 올해 최저임금은 최소한 7%+α, 시급 6000원대로 올린다는 게 정부의 방침처럼 인식됐다. 노동계가 사상 최고폭인 79.2% 오른 시급 1만원을 요구한 것은 정부 분위기를 의식한 것이기도 하다. 이에 경영계는 동결을 제시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최저임금을 지급할 사용자들은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영세기업과 자영업자들이다. 최저임금 적용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14.6%, 266만명이다. 그중 98%가 300명 미만 중소기업에, 88%는 30명 미만 사업장에 근무한다. 따라서 목청을 높이고 있는 전경련·경총 등 경제단체와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동자단체는 최저임금과 사실상 관계가 없다.

문제는 영세·자영업자들이 대폭 오른 임금을 감당할 수 있느냐다. 경총과 중소기업중앙회 공동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면 중소기업 2곳 중 1곳은 고용을 줄이겠다고 응답했다. 소상공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5%는 최저임금이 6000원만 돼도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기업은 고용을 줄인다는 이른바 '최저임금의 역설'이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이 낮지 않다는 반론도 많다. 우리 최저임금은 산정 시 상여금, 숙박비 등 수당이 대거 제외되기 때문에 과소평가됐다는 것이다.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환산한 우리나라의 연간 최저임금은 2013년 1만5576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5개 회원국 중 10위를 차지해 미국, 일본보다 높다는 주장도 있다. 2000년 이후 우리 최저임금은 연평균 8% 이상 올랐다. 이런 얘기를 하면 노동계는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최저임금을 좀 올리자는 데 기업은 감원으로 겁박한다고 응수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역설은 엄연한 현실이다.

독일은 올해 처음으로 시간당 8.5유로(약 1만600원)의 최저임금제를 시행했는데 1·4분기에만 월 450유로 이하 일자리, 즉 '미니잡'이 24만개나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행정명령으로 연방정부 사업에 참여하는 근로자의 최저임금을 7.25달러에서 10.1달러로 인상했을 때 의회 예산국은 "90만명이 빈곤을 탈출하겠지만 일자리 50만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소득 양극화를 비판하며 '부자 증세'를 주장하고 있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면 고용이 현저히 줄어 단순 기술을 가진 근로자들이 곤경에 처하게 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최저임금위원회는 3일 회의를 속개한다. 고용노동부장관이 최저임금을 고시하려면 오는 15일까지는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
협상 전망은 극히 불투명하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적당히 정부안대로 결정하다간 상당한 후폭풍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노사는 밤샘토론을 해서라도 인식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