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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노사정 대타협은 환상이다

이해당사자 동의 얻으려다 '맹탕 개혁'된 공무원연금
노동 개혁은 답습 말아야

[이재훈 칼럼] 노사정 대타협은 환상이다

올 하반기 최대의 국정과제로 떠오른 노동개혁을 놓고 정부.여당에서 비장한 각오를 담은 수사(修辭)가 넘쳐난다. "국민과 미래세대를 위해 표를 잃을 각오로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노동개혁은 생존의 필수 전략이자 세대 상생을 위한 시대적 과제다"(박근혜 대통령). 정치인이 "표를 잃을 각오로"란 말을 쓸 때는 모든 것을 걸겠다는 다짐이다. 게다가 이인제 새누리당 노동시장선진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노동개혁 입법을 연내에 마무리하겠다"며 속전속결의 스케줄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은 여전하다. 용두사미로 끝난 공무원연금 개혁의 트라우마가 남아있기 때문인가.

박근혜정부가 제시한 4대 구조개혁 중 첫 번째로 추진됐던 것이 공공개혁, 즉 공무원연금 개혁이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해 9월 공무원연금 개혁의 출사표를 던지면서 "정권을 잃더라도 개혁을 해내겠다"고 공언했다. 정부.여당이 개혁의 중심에 서겠다는 결기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정작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부.여당은 주도권을 잃고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과 공무원노조에 질질 끌려다녔다. 대타협은 이뤘으나 개혁의 대의는 온데간데없어졌다. 개혁대상자인 공무원노조가 논의를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여야는 타결 직후 "사회적 합의의 모범 선례를 남겼다"고 주장했지만 누가 봐도 '맹탕개혁'이었다.

노동개혁도 공무원연금 개혁의 전철을 밟다간 실패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결국은 방법론의 문제다. 정부.여당은 일단 노사정위를 통해 사회적 합의 도출을 시도할 계획임을 밝혔다. 다만 여당은 야당과 노동계가 요구하는 '국회 내 대타협기구' 구성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당연하다고 본다. 이 제안은 노동계와 야당이 힘을 합쳐 노동개혁을 저지하겠다는 뜻이다. 공무원연금도 국회 국민대타협기구를 만들어 이해당사자의 동의를 구하려다 배가 산으로 갔다.

지난 4월 한국노총의 탈퇴로 식물 상태인 노사정위가 재가동되면 노사가 개혁에 합의할 수 있을까. 매우 비관적이다. 우선 한국노총 탈퇴 이후 상황이 바뀐 게 없다. 한국노총은 노동개혁에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임금피크제 확산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과 저성과자 해고를 위한 지침 변경을 철회해야만 노사정위에 복귀하겠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이 노동개혁의 핵심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은 처우 좋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주축을 이룬 노동 기득권자들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양극화를 개선하자는 것이 노동개혁의 취지이고 보면 양대 노총은 방어적이고 반개혁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노조는 최근 통상임금 확대,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을 거저 얻어내다시피 했다. 문제를 계속 다루다 보면 뺏길 일만 생길 뿐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 "외환위기 때 같은 위기감이 없으면 노사정 대타협은 불가능하다"(김동원 고려대 교수), "노동개혁을 노사정위에만 맡기는 외통수 논의 프레임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노사정위에서 노총이 근로자를 대표할 수 있느냐도 해묵은 논란거리다. 양대 노총은 전체 근로자의 10%만을 대표할 뿐이다. 노사정위에서 116만 실질 청년실업자나 600만 비정규직 근로자의 목소리는 들어볼 길이 없다. 이들을 배제한 합의가 진정 사회적 합의라 할 수 있을까. 결국 노사정 대타협을 시도는 하되 여기에 매달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대타협이 무산됐을 때 개혁을 밀고갈 방안, 즉 '플랜 B'를 가다듬어야 한다. 적당히 타협을 추구하다간 진짜로 표를 잃게 될 것이다.


물론 야당의 반대가 문제이긴 하다. 정부.여당은 야당 설득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야당도 노동개혁에 대해 무조건 반대할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노동 기득권자를 편드느라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외면한다는 따가운 눈총을 감당할 수 있겠나.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