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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영 칼럼] 의원 수 늘리자니.. 정치권은 딴 세상인가

[염주영 칼럼] 의원 수 늘리자니.. 정치권은 딴 세상인가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회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의원정수를 늘리자고 제안했다. 현재는 지역구 246명에다 비례대표 54명을 합쳐 300명인데 이것을 지역구는 그대로 두고 비례대표를 123명으로 늘려 총 369명으로 하자는 것이다.

야당은 이 제안을 아직 당론으로 채택하지는 않았다. 지도부가 여론의 반응을 떠보는 중이다. 문재인 대표는 지난 2012년 대선 때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이를 실현해보려는 시도인 듯하다. 그러나 그때는 의원정수는 늘리지 않는 쪽이었다. 심지어 안철수 의원은 200명으로 줄이자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혁신위를 내세워 의원정수를 대폭 늘리자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야당의 제안은 전혀 별개인 두 사안을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한데 묶어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과 의원정수를 늘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의원정수를 늘려야만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자연적으로 의원정수가 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문가 사이에도 찬반이 갈린다. 지역주의는 우리 정치가 풀어야 할 최대 난제다. 경상도는 새누리당이, 전라도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싹쓸이하는 지역적 편중을 해소하는 데 이 제도가 도움이 될 것이다. 제3당의 원내 진출이 쉬워져 유권자의 선택 폭도 넓어진다. 사표도 줄일 수 있다. 장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반면 대화와 타협이 정착되지 않은 우리 정치현실에서 다당제가 적합한지에 대한 반론도 있다. 찬반이 나뉘지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해볼 만하다는 점에는 공감이 간다.

그러나 의원정수를 늘리는 데 대한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특권과 특혜를 내려놓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득권 챙기기에 바빴다. 특히 야당은 국민적 요구였던 공무원연금 개혁의 뒷다리를 잡았고 각종 경제살리기 입법의 처리를 지연시켰다.

요즘 야당의 행태를 보면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우리 경제는 수년째 깊은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엔저의 일본과 첨단기술을 갖추기 시작한 중국이 우리나라를 협공하고 있다. 조선.철강.전자 등 주력 산업마저 흔들린다. 수출과 내수가 동반 위축되면서 기업들은 경영난을 겪고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줄을 잇는다. 대학을 나와도 몇 년째 취업을 못해 실업자나 알바로 떠도는 청년층이 부지기수다.

대다수 국민이 경제난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정치권이 나라의 장래와 국민을 생각한다면 고통을 분담하자고 나서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도 의원정수를 69명이나 늘리겠다고 하니 딴 세상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청년들 일자리는 못 만들어주면서 자기들 일자리만 늘린다는 비난이 일지 않겠는가.

야당의 제안 가운데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문제는 분명 검토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의원정수를 늘리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의원 수를 늘리지 않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안에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면 그만큼 지역구를 줄이면 된다. 선관위 권고안의 취지도 그것이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내세워 슬그머니 숙원사업인 의원정수 늘리기를 끼워 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는 야당의 강심장이 놀랍다. 성찰과 자기 희생이 없는 정치가 국민의 마음을 자꾸 멀어지게 한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