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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연비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클린 디젤' 한낱 허구였나 친환경차 경쟁 가열될 듯
한국차에는 시련 될 수도

[이재훈 칼럼] 연비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기름값이 쌀 때 자동차업계의 관심은 힘 좋고 빠른 차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생산하느냐에 있었다. 소비자들이 자동차 연비(단위 연료당 주행거리 비율)를 따지기 시작한 것은 1973년 1차 오일쇼크 이후다. 1975년 미국 정부가 기업평균연비(CAFE)제도를 통해 자동차 연비와 배기가스를 규제하자 친환경·연비전쟁이 본격화했다. 연비는 곧 기술력의 상징이 됐다.

연비 경쟁에서 앞서간 것은 독일이었다.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보다 연비가 20%가량 높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적다. 다만 질소산화물 등 유해 배출가스가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1897년 루돌프 디젤이 세계 최초로 디젤 기관을 개발한 이후 독일은 디젤 엔진 기술을 선도해왔다. 디젤차는 1980년대에 도약기를 맞았다. 보쉬의 연료 직분사 기술, 아우디의 TDI 엔진이 나오면서 소음과 진동을 잡고 연료효율을 한층 높였다. 그 덕에 디젤엔진을 탑재한 소형 승용차들이 독일, 프랑스에서 속속 선보였다.

그 사이 일본 업체들은 전기배터리와 가솔린 엔진을 결합한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전력투구했다. 미국 업체들은 방향설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1997년 도요타가 L당 17㎞를 주행하는 1세대 프리우스를 공개하자 세계 자동차업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1차 연비전쟁의 승자는 일본이었다. 그러나 하이브리드는 가격이 비싸고 출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각국의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독일업체들은 디젤엔진의 연비를 최대화하면서 배기가스는 줄이는 '클린 디젤'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후 연비에서 하이브리드차와 견줄 수 있는 디젤차가 쏟아졌다. 유럽 각국 정부도 디젤차에 세금감면 등 인센티브를 줬다. 그 결과 유럽 승용차 시장에서 디젤차 비중은 2000년 32.8%에서 2011년 56.1%까지 치솟았고 지난해에는 53.6%에 달했다.

그런 디젤차가 세계 최대의 시장이라는 중국·미국에서는 환경관련 규제 등으로 발을 못 붙이고 있다. 특히 미국은 디젤 가격이 가솔린보다 비싼 탓에 디젤차 점유율이 3%에 못미친다. 폭스바겐의 조작사건은 미국에서 디젤차 기반을 하루빨리 다져야 한다는 조바심에 기인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디젤엔진의 배출가스 정화장치는 이미 개발돼 있다. 그러나 이를 가동할 경우 차량의 연비와 성능이 떨어진다. 고효율·친환경을 표방한 폭스바겐은 결국 속임수를 선택했다.

폭스바겐 사태의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폭스바겐그룹 차 1100만대의 배기가스가 조작됐고 메르세데스 벤츠·BMW 등 다른 업체들도 디젤차 연비 과장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자동차산업의 대변혁, 나아가 디젤엔진의 퇴출, 독일차의 몰락이 임박했다고 점치는 전문가들도 있다. 연비전쟁이 끝났다는 얘기마저 나왔다. 세계 각국의 자동차 관련 정책이 적잖이 바뀔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배출가스 규제와 검사 방식을 강화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의 반사이익은 누가 누리게 될까.

상식적으로 일본 하이브리드차, 미국 전기차 등 친환경차의 대중화가 가속될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수소차 개발도 빨라질 것이다. 독일·유럽 업체들도 120년 전통의 디젤엔진 기술을 쉽사리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친환경차 경쟁, 연비전쟁은 더욱 가열되리라는 관측이 오히려 설득력 있다.

그럼 현대·기아차 등 한국차는 어찌 되나. 한국차들은 연비전쟁에서 항상 한걸음 뒤처져 있었다. 하이브리드차는 2000년대 후반에야 선보였고 디젤세단은 불과 1~2년 전 출시했다.
반사이익을 논하기 앞서 고연비·친환경 면에서 선발 업체들을 부지런히 따라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폭스바겐 사태는 제3차 자동차 연비 전쟁을 예고한다"며 "업체들은 친환경차의 대안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차는 새로운 도전에 맞닥뜨린 셈이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