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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영 칼럼] 차베스 포퓰리즘의 끝

자원부국 베네수엘라 복지 실험.. 대중 인기 영합해 경제논리 외면
퍼주기 일변도 정책은 성공 못해

[염주영 칼럼] 차베스 포퓰리즘의 끝

중남미에 위치한 석유의 나라 베네수엘라가 경제파탄의 위기를 맞고 있다. 폭등하는 물가고에 서민들의 삶이 말이 아니다. 이 나라의 화폐 볼리바르화의 가치는 지난 1년 동안 7분의 1로 떨어졌다. 외환 사정이 간당간당하다. 보유 달러는 이미 바닥 났고 이제는 금덩이를 내다 팔고 있다. 내년에 가면 디폴트(채무 불이행) 선언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외신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매장량이 세계 2위인 데다 천연가스 매장량이 세계 8위, 철광석 매장량도 세계 10위다. 석유 등 자원 가격이 치솟던 시절에 세계의 부러움을 샀던 나라 중 하나다. 이명박정부 때는 이 나라를 자원협력 파트너로 삼았을 만큼 중남미의 대표적인 자원강국이었다. 당시 총 111억달러 규모의 자원협력 사업을 공동 추진키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무엇이 이런 나라를 불과 몇 년 만에 경제파탄의 위기로 몰아 넣었을까.

우고 차베스는 2013년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14년간 이 나라의 좌파정권을 이끌었다. 그는 '민중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집권 후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거기서 벌어들인 돈을 빈민복지에 쏟아 부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무상교육을 베풀었다. 보건의료 서비스도 완전 무상화했다. 의사가 모자라자 석유를 주고 쿠바 의사들을 수입했다. 대중의 인기를 끌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다. 토지개혁도 단행했다. 유휴토지를 빈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었다. 남의 땅을 불법 점유했더라도 점유기간이 10년 이상이면 점유자에게 소유권을 인정해줬다. 경제논리는 무시됐다. 교육과 사회간접자본 등 미래에 대한 투자도 외면했다. 석유를 확대재생산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지 않고 그냥 퍼주기만 했다. 쿠바와 니카라과 등 주변의 반미 국가들에 석유를 반값에 팔았다.

대중은 환호했다. 그의 빈민복지 정책은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 체제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그러나 이미 경제는 속병이 들기 시작했다.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부유층 이민이 급증했으며 인플레이션이 극성을 부렸다. 여기에다 글로벌 불황과 저유가는 석유를 팔아 포퓰리즘 정책을 펼쳤던 베네수엘라 정부에 치명타를 안겼다.

포퓰리즘은 석유로도 감당이 되지 못했다. 재정이 바닥나자 두 가지 비상수단을 동원했다. 하나는 정부 발권력이고 또 하나는 외채였다. 돈을 마구잡이로 찍어냈다. 시중 통화량은 2년간 4배로 늘었고 연간 100%에 달하는 살인적인 인플레가 유발됐다. 볼리바르화는 휴지조각이나 다름 없고 암달러 시장에서는 공식 환율의 90배를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2007년부터 중국에서 빌린 돈이 450억달러가 넘었다. 경제가 파탄 나자 핵심 지지층이었던 빈곤층마저도 등을 돌리는 상황이 됐다. 지난해 이 나라 전역에서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로 43명이 숨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차베스의 빈민복지 정책은 비슷한 시기에 같은 목적을 추구했던 룰라 데 시우바 브라질 전 대통령의 정책과 대비된다. 룰라도 차베스와 같은 주장을 했다. 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토지를 무상 분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집권 후에는 달랐다. 반시장적 사고와 정책을 버렸다. 교육과 투자를 통해 빈민들에게 돈을 퍼주기보다는 돈을 버는 능력을 키워주는 데 주력했다. 룰라는 경제논리를 존중했지만 차베스는 그러지 않았다. 차베스 포퓰리즘은 베네수엘라의 경제 파탄을 가져왔고 빈민들의 정신마저 병들게 했다. 포퓰리즘의 시작은 달콤하지만 그 끝은 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다.
포퓰리즘으로 일어선 정권은 포퓰리즘으로 망한다. 얼마 전 남유럽의 그리스가 그랬다. 이번에 베네수엘라가 다시 이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