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염주영 칼럼] 유일호 경제팀이 가야 할 길

경기부양 정책수단 이미 고갈돼
빈 총 들고 전쟁터에 나서는 격
구조개혁이 난관 돌파의 해법

[염주영 칼럼] 유일호 경제팀이 가야 할 길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가 출전을 준비 중이다. 박근혜정부 경제팀 세 번째 수장으로서다.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여 동안 마무리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악전고투가 예상된다. 전선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다.

유 부총리 내정자는 지금 비무장이나 다름없다. 실탄 떨어진 빈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고 있다. 원래 그에겐 네 가지 무기가 있었다. 첫 번째 무기는 재정 적자 폭을 확대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금리를 내리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부동산시장 띄우기고, 네 번째는 주식시장 띄우기다. 이 가운데 당장 쓸 수 있는 무기는 하나도 없다. 전임자가 실탄을 모두 써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대내외 환경마저 좋지 않다. 세계경제는 중국경제의 둔화에다 미국의 금리인상까지 겹쳤다. 신흥국 위기 조짐도 가시권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국내경제는 가계와 기업 부채가 위험한 뇌관으로 등장했다. 어느 한 방향도 환한 구석이 없다.

명문 유펜(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출신의 경제전문가인 유 내정자가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그의 말이 더욱 걱정이다. 그는 경제부총리로 지명된 직후 "최경환 부총리가 추진한 경제정책의 큰 틀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경기부양책과 구조개혁을 병행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경기부양책을 펴기 위한 정책수단들이 최 부총리에게는 유용한 무기였지만 그에게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짐이다. 그는 재정의 확대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급증하는 국가부채를 생각하면 긴축을 해야 할 형편이다. 실제로 올해 예산의 총지출 증가율이 3%로 경상성장률 전망치 4.2%보다 낮다. 경제가 커지는 만큼도 지출을 못 늘리는 셈이다.

금리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미국의 금리인상만 없었어도 무리를 하면 금리를 한두 번은 더 내릴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통화정책 키를 쥔 한국은행은 이미 부채 공세를 시작했다. 최근 부채 관련 보도자료를 쏟아내고 있다. 빚이 너무 많이 늘어나 위험하니 대비가 필요하다는 여론 조성에 나선 것이다. 통화정책의 지원은 고사하고 뒷덜미를 잡지 않으면 다행이다. 부동산시장도 이미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다시 불을 지필 수 있겠지만 가계부채가 위험수위에 근접한 상태여서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증시도 마찬가지다.

유 내정자의 앞길에는 어렵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그는 보급로가 끊긴 상황에서 전투를 해야 한다. 이 점에서 최 부총리와는 다른 환경에 처해 있다. 고장 난 펌프에 마중물을 붓는다고 지하수를 퍼올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증대라는 무거운 등짐을 짊어지고 있다. 발목에는 과다 부채라는 족쇄도 채워져 있다. 맘껏 뛰고 달릴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그런 모습으로 실탄 없는 빈 총을 들고 포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전쟁터에 서야 한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무기가 있다. 구조개혁이다. 그것은 한국경제의 역동성 회복에 장애가 되는 기득권 구조를 깨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이다. 기득권 계층의 거센 반발과 저항이 수반되는 어려운 과제다. 그렇지만 방법이 있다. 여론을 등에 업으면 가능하다. 다행히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구조개혁과 한계기업 구조조정에 여론의 공감대가 모아지고 있다. 청와대의 개혁의지가 역대 어느 정부 못지않게 강하다는 점도 큰 우군이다. 따라서 여론을 자기 편으로 만들면 된다.


오는 11일 있을 국회 청문회가 그 첫 번째 기회다. 경제회생의 전략과 구조개혁의 실천의지를 보여야 한다. 빈 총 들고 적당히 쏘는 척하면서 시간만 허비할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구조개혁에 전력투구함으로써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갈 것인가. 유 부총리 내정자의 선택이 궁금하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