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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대타협' 쇼는 끝났다

'협의를 위한 합의' 결국 파국.. 노동계는 기득권 지키기 급급
정부 주도 개혁 밀고나가야

[이재훈 칼럼] '대타협' 쇼는 끝났다

살얼음판을 걷던 '9.15 노사정 대타협'이 불과 넉달 만에 파국을 맞았다. 한국노총의 대타협 파기는 충분히 예상됐던 만큼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17년 만의 사회적 합의' '역사적 위업이자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9.15 대타협이 결국 엉성한 허무극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확인돼 씁쓸할 뿐이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은 수수깡처럼 허약한 대타협을 해외를 돌며 자랑했다. 나라 망신이 따로 없다. 이제 와서 노사정은 파기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책임은 한노총에 있다. 모두가 잘못했다는 양비론적 시각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9.15 대타협은 애초부터 억지였고 미봉책이었다. 노동개혁의 핵심 쟁점 대부분에 대해 "협의해서 대안을 마련한다"는 식이었다. 기간제법, 파견법이 그랬고 한노총이 파기의 빌미로 삼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등 양대 지침도 그랬다. "협의를 계속하겠다는 합의" "합의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동의"라는 분석은 비아냥이 아니라 사실이다. 노사정 모두가 양보할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성과 보여주기'에 집착한 결과다. 겉만 번드르르한 대타협이 깨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무엇보다 한노총은 노동개혁에 대한 진정성이 없었다. 노동기득권자인 한노총은 협상에서 얻을 것은 없고 지켜내야 할 것만 있었다. 노동계는 정치권과 정부의 실책으로 정년 연장, 통상임금 확대, 근로시간 단축 등 여러 가지 선물을 거저 챙겼다. 한국 경제가 위기 상황이라고 하지만 노동계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노총이 지난해 8월 노사정위원회 복귀 자체를 "대승적인 양보" 운운하며 떵떵거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9.15 대타협도 총론 부분에서는 손색이 없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비롯한 임금체계 개편을 수용하고 일반해고 등에 관한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축소, 즉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를 개혁의 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한노총은 각론 부분에서 협상에 응하지 않는 전략을 썼다. 대안없는 반대와 협의 거부로 일관했다. 특히 양대 지침의 경우 20여 차례에 걸친 정부의 협의 요청에도 꿈쩍 않다가 정부가 초안을 공개하자 "합의 위반"이라며 들고 일어섰다. 이럴 거면 한노총은 뭐하러 임금체계 개편에 합의했나.

대타협 이후 4개월을 둘러보면 한노총의 목표는 시간끌기를 통한 노동개혁의 무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노총은 양대지침에 대해 한번도 자체안을 제시한 적이 없다. 그저 시간 제한을 두지 말고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반해고에 대해서는 덮어놓고 '쉬운 해고'라는 프레임을 덧씌웠다. 세상에 이런 협상은 없다. 김동만 한노총 위원장의 입지도 문제다. 리더십이 확고하지 못하다보니 산하 산별노조의 대타협 반대 목소리에 쉽사리 흔들리고 의사 결정을 좀체로 하지 못한다.

'대타협' 쇼는 끝났다. 한노총은 노사정위 '탈퇴'가 아니라 '불참'이라며 협상의 여지를 둔 것처럼 표현했으나 아무 의미가 없다. 정부는 이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노동개혁의 목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와 일자리 만들기다. 이를 위해선 노동.임금의 유연화가 필수적이다. 양대지침이 노동개혁의 핵심의제라는 얘기다. 비록 노동개혁 4법은 국회의 벽에 부닥쳐 처리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양대 지침은 온전히 정부 몫이다. 예정대로 지침 제정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노동계에 대한 기대는 접어야 한다.
한노총의 상황을 보면 백날 협상을 해도 답이 나올 수가 없다. 개혁의 대상이자 노동 기득권자에게 합의를 구걸한다고 될 일인가. 고용절벽에 부닥친 청년 실업자와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중소기업 근로자들을 바라보며 개혁을 밀고 가야 한다. 독일, 네덜란드, 영국의 노동개혁도 결국은 정부 주도로 성과를 냈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