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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영 칼럼] 시궁창에 빠진 경제

야당, 기업고통 외면하고 장기파업.. 3류정치가 경제 쪼그라들게 해
정치 바꾸려면 사람부터 바꿔야

[염주영 칼럼] 시궁창에 빠진 경제

국회는 습관성 전신마비 환자나 다름없다. 1년에 몇 차례씩 마비된다. 이번에도 벌써 두 달째다. 지난해 정기국회 이후로 두 번이나 임시국회를 열었지만 줄곧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런 국회를 보면 얼마 전 기록적인 폭설과 한파로 마비된 제주공항이 떠오른다. 수많은 승객이 폐쇄된 공항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노숙을 하거나 앉은 채로 새우잠을 자야 했다. 공항 한 곳이 마비돼도 상당수의 국민이 참기 힘든 고통과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하물며 국회가 마비되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더욱 가당치 않은 것은 야당의 경제 관련 법안들을 다루는 행태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29일 원샷법(기업활력제고특별법)과 북한인권법 합의를 파기하는 과정을 보면 그렇다. 이날 두 법안의 본회의 처리는 엿새 전에 이뤄진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사항이었다. 그러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합의를 뒤집고 두 법안의 처리를 무산시켰다. "이 법 하나로 경제가 살아나겠나"라고 반문한 김 위원장의 발언이 참으로 경망스럽다. 김 위원장마저 운동권 친노 세력에게 휘둘리면 더불어민주당의 앞날은 어두울 뿐이다.

원내대표 간 합의는 당대당의 합의다. 그 합의마저 지켜지지 않는다면 국회는 설 자리가 없다. 국회선진화법에 앞서 정치도의와 정당의 신뢰에 관한 문제다. 합의를 파기한 이유가 참으로 난해하다. 야당은 원샷법이 '재벌특혜법'이라서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 법은 주력업종의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의 사업구조 재편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이다. 협상 과정에서 야당이 제기한 문제들도 상당 부분 걸러졌다. 그런데도 산업 및 기업의 자율구조조정법을 재벌특혜법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무지의 소치다. 편협한 운동권적 시각에 매몰돼 국가 경영자로서, 또한 수권 정당으로서의 책임을 망각한 것이다. 북한인권법은 실질적 내용과는 무관한 자구 하나가 문제였다고 하니 더욱 가관이다.

우리 경제는 지금 시궁창에 빠져 빈사 지경이다. 올해 첫 달의 실적 지표들이 발표되고 있는데 내용이 너무 좋지 않다. 1월 수출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18.5%나 줄었다. 지난해에도 수출이 부진했지만 감소율은 7~8% 수준이었다. 내수도 '소비절벽'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핵심기업들의 영업이익이 반토막 나고 자력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한계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주력산업들은 자꾸 중국에 밀려나는데 새로운 먹거리 산업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미국의 금리인상, 중국의 경제불안, 국제유가 급락 등 해외로부터 초대형 태풍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다.

지금 산업 현장에서는 기업들이 비명을 지르고 취업 현장에서는 청년실업자들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여야는 정치 싸움을 하느라 경제가 안 보이는 모양이다. 진짜 경제위기가 닥쳤는데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니 큰일이다. 국회의원들은 구름 위를 거니는 신선들인가.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대다수 국민들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모든 책임을 야당에만 돌릴 수는 없다. 국회선진화법은 일방주의와 폭력국회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주도해 만든 법이다. 포용과 타협의 정치를 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이었다. 박 대통령과 여당은 그 약속을 실천하지 못했다. 그리고 야당은 이 법을 지능적으로 악용했다. 선진화법의 실패는 삼류 정치를 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일깨운다. 법으로 안 되면 국민이 나서서 삼류 정치에다 퇴장 명령을 내리는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세계 초일류 기업 반열에 오른 것은 이건희라는 혁신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자"는 말로 혁신을 이끌었다.
정치도 이제는 일류가 돼야 한다. 정치가 달라지려면 사람을 바꿔야 한다. 국회에 고여 있는 썩은 물을 깨끗이 쏟아버리고 새 물로 갈아주자. 민주주의만 빼고 다 바꾸자. 4.13 총선이 그 기회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