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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역시 스티글러가 옳았다

심야 콜버스 규제 되레 강화.. 신생업체는 사업 접을 수도
정부는 기존업자 보호에 몰두

[이재훈 칼럼] 역시 스티글러가 옳았다

스마트폰으로 버스를 호출하는 심야 콜버스 서비스를 내놓은 콜버스랩의 박병종 대표는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경제신문 정보기술(IT) 담당 기자였다. 박 대표는 차량공유 서비스업체 우버가 불법 시비로 한국에서 사실상 퇴출되는 과정을 보도하면서 법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다. 바로 콜버스다. 그가 지난해 여름 창업에 뛰어들면서 가장 철저하게 매달렸던 작업은 법률 검토였다. 그는 한 매체 인터뷰에서 "법무법인과의 협의를 통해 합법적인 사업을 설계하다 보니 전세버스 업체와 손잡고 애플리케이션(앱) 가입자를 상대로 한 서비스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콜버스가 합법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박 대표가 최근 아주 황당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25일 운수사업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논란이 돼온 심야 콜버스를 합법화했지만 사업참여 대상을 기존 버스.택시사업자로만 한정했기 때문이다. 전세버스 사업자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면서 콜버스랩 같은 승객호출 앱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세버스를 활용한 콜버스 서비스는 불법이 돼버렸다. 콜버스랩은 도대체 어쩌라는 얘긴가.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들과 만나 "헤이딜러.콜버스 등 신산업 분야는 기존 업역과 갈등을 유발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윈윈 방법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앞서 강 장관은 지난 1월 미래산업 조찬간담회에서 "행정이 사회 혁신의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며 "시장진입을 가로막는 사전규제는 최소화하고 소비자 피해 등에 대한 사후관리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달 사이 규제완화에 대한 국토부의 입장이 미묘하게 변한 것이다. 결국 정부는 신사업자와 기존 사업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건 규제완화가 아니라 규제강화, 새로운 진입장벽의 도입이다.

전세버스를 제외한 데 대한 국토부의 해명이 궁색하기 짝이 없다. 본지가 국토부 정책을 비판하는 사설(2월 24일자 '윈윈 함정에 빠진 콜버스 정책')을 썼더니 곧바로 국토부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심야버스를 운행한 전세버스 기사가 낮에 학원버스나 관광버스를 운행할 경우 사고 위험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존 버스기사나 택시기사는 밤낮으로 운행하면 안전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명확히 답하지 못했다.

콜버스에 반대해온 택시.버스사업자들은 사업 기회를 거저 얻게 됐다. 콜버스랩은 현재 사업방식을 접고 택시조합과 협상을 해야 한다. 그런데 택시.버스업자가 진입장벽을 등에 업고 협상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는 점이 문제다. 자칫 콜버스랩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만 뺏기고 사업을 접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박병종 대표는 "택시업자와 협업이 어려워졌을 때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요즘 뜨고 있는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나 공유경제사업 등 신사업은 기존의 사업영역을 파괴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 사업자와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이때 정부가 기존 규제의 틀을 깨지 않으면 혁신적인 스타트업은 도저히 클 수가 없다. 정부가 최근 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완화를 거듭 강조해왔기 때문에 콜버스 불법 여부에 대한 국토부의 판단은 첨예한 관심사였다. 결과는 기득권 보호였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는 일찍이 정부 규제정책의 허점을 간파했다. 규제기관이 오히려 피규제기관에 포획돼 이들을 위한 규제정책을 만들게 되고 소비자 피해를 유발한다는 '포획이론'이 그것이다.
콜버스 문제를 다루는 국토부의 모습이 딱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규제는 모두 물에 빠뜨려놓고 꼭 살려낼 것만 살리자" "규제는 쳐부술 원수이자 암덩어리"라고 다짐해도 소용이 없다. 규제를 권력으로 여기는 관료들에게 규제개혁을 맡겨서는 답이 안 나온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