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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스웨덴이 롤모델이라고?

복지·재정 개혁했지만 세계 최강 복지는 여전
어떤 스웨덴을 본받을 건가

[곽인찬 칼럼] 스웨덴이 롤모델이라고?

올로프 팔메를 빼놓고는 스웨덴을 말할 수 없다. 팔메는 사회민주당 출신으로 두 번에 걸쳐 모두 11년 동안 총리를 지냈다. 1986년 2월 28일은 스웨덴에 슬픈 날이다. 이날 팔메 총리는 스톡홀름 시내에서 암살범의 총을 맞고 숨졌다. 영화를 보고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경호원도 없었다. 정치적으로 팔메는 비동맹을 추구했다. 그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을 대놓고 비판했다. 1970년대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평양에 대사관을 연 것도 바로 팔메다. 지금도 스웨덴 대사관은 북한과 서방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경제적으로 팔메는 사회주의자였다. 당연히 성장보다 복지를 중시했다. 원래부터 스웨덴은 사회주의 전통이 세다. 1976년 총선에서 패할 때까지 스웨덴은 사민당 40년 '독재'가 이어졌다. 그 정점에 팔메가 있다. 스웨덴은 연금.노동.여성.주택.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현대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다만 1990년대 초반 경제위기가 닥치자 정권이 보수진영으로 넘어갔고, 방만한 복지가 수술대 위에 올랐다. 이후 정권은 진보.보수를 오갔지만 복지 다이어트는 꾸준히 이뤄졌다.

그렇다고 복지천국 스웨덴의 위상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세부담률 통계를 보자. 조세부담률은 국민이 낸 세금을 국내총생산(GDP)에 견줘 보는 수치다. 스웨덴의 조세부담률은 1987년 39.5%로 꼭짓점을 찍었다. 보수 쪽으로 정권이 넘어간 1990년대 초 이 숫자가 한때 33%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한 번도 30% 밑으로 내려간 적은 없다. 지금도 30%대 중반을 유지한다. 조세부담률에 사회보장기여금까지 더한 국민부담률은 이보다 더 높다. 한때 50%를 웃돌았고 지금은 40%대 중반이다.

예나 지금이나 스웨덴은 고부담.고복지 국가다. 그 맞은편에 저부담.저복지 국가인 한국이 있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007년 21%를 정점으로 되레 내리막길이다. 올해는 18%로 추정된다. 스웨덴은커녕 OECD 평균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웨덴식 복지를 꿈꿨다. 참여정부에서 일한 이백만 전 홍보수석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노무현은 '복지천국' 스웨덴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노 전 대통령이 미국의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을 탐독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리프킨에 따르면 "유러피언 드림은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 내의 관계를…부의 축적보다 삶의 질을 강조한다." 요컨대 미국인이 일하기 위해 산다면 유럽인은 살기 위해 일한다는 것이다. 미국에도 유러피언 드림을 꿈꾸는 '별종'이 있다. 바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다. 사회주의자 샌더스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다름 아닌 팔메다.

최근 정부가 스웨덴을 복지.재정개혁의 롤모델, 일본은 반면교사로 삼자고 말했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다. 빚더미 일본은 분명 반면교사다. 하지만 스웨덴이 롤모델? 글쎄다. 누가 뭐래도 스웨덴은 진보.노무현.샌더스 계열이다. 그런 나라를 보수적인 박근혜정부가 본받자고 하니 영 어색하게 들린다. 저승의 팔메도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이 있다. 우리 정부도 같은 잘못을 저지른 것 같다. 보고 싶은 스웨덴의 일면만 봤다. 그 바람에 복지국가 스웨덴이라는 큰 그림을 놓쳤다.

팔메의 후계자로 예란 페르손 총리를 꼽을 만하다. 페르손은 10년간(1996~2006년) 총리를 지냈다. 2001년엔 유럽연합(EU) 의장국 대표 자격으로 남북한을 동시 방문하기도 했다. 2년 전 한국을 찾은 페르손은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복지는 늘 인구 문제를 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래 세대가 줄면 아무리 훌륭한 연금 시스템도 무용지물이라는 얘기다.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은 1.9 정도다. 한국은 1.24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우리가 어떤 스웨덴을 롤모델로 삼아야 할지는 자명하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