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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영 칼럼] 내 돈이라면

부실기업 회생 가능성 판단하고 지원자금 회수장치 만들어 세금 낭비 최소화하는 노력을

[염주영 칼럼] 내 돈이라면

정부와 한국은행이 한 달째 구조조정 재원 분담 문제를 논의 중이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위한 것이라고 하나 실상은 부실기업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 조선.해운업 분야 부실기업에 지원할 돈을 정부와 한은이 얼마씩 부담할 것인지가 논의의 핵심이다.

그 논의 과정이 참으로 희한하다. 문제의 부실기업들이 살아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돈은 얼마를 투입할 것인지, 그 돈을 언제까지 어떤 절차로 회수할 것인지 등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그저 돈부터 준비하고 보자는 식이다. 실탄은 많을수록 좋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러니 '깜깜이' 구조조정, '묻지마' 구조조정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이런 식으로 부실기업에 물린 돈이 엄청나다. 은행들은 STX조선에다 4조5000억원,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을 긴급 수혈했지만 기업을 살려내지 못했다. 대우조선은 자금지원 7개월 만에 다시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성동조선.SPP조선.대선조선 등 이런 예는 부지기수다. 돈이 돈값을 못하고 폐지처럼 버려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부실기업에다 무얼 믿고 국민 혈세를 몇 조원씩 펑펑 쏟아붓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언제부터 우리 은행들이 이토록 강심장이 됐는가.

거대 부실기업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은 정부가 국책은행을 동원해 이뤄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기업 회생과 자금회수 가능성에 대한 상업적 판단이 중요하다. 그 상업적 판단은 회생과 회수 가능성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기업은 퇴출시킨다는 결정까지를 포함한다. 그런데 정부나 국책은행은 그런 상업적 판단을 기대하기 어려운 의사결정 구조를 지니고 있다. 잘해야 1년 남짓 있다가 떠날 장관과 낙하산으로 내려온 국책은행장은 상업금융의 전문가가 아니다. 구조조정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다.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

정부의 이런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과거 정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사람들이 더 비판적이다. 경제학자 10명이 지난주 '구조조정 새 해법을 찾아야 한다. 현 상황을 우려하는 지식인들의 고언'이란 제목의 공동성명을 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학자 가운데는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 역할을 했거나 노무현.이명박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핵심 브레인으로 일했던 이들이 포함돼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우리 경제에 필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부실기업 회생 가능성에 대한 정확한 판단 없이 돈키호테 식으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것이 문제다. 밀어붙이기는 업적 지향적 관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게다가 구조조정은 국민 세금으로 부실기업에 선심을 쓰는 일이다. 관료들이 꺼릴 이유가 없다. 비용 부담자와 수혜자가 일치하지 않으면 부조리가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 부담은 국민이 하고, 혜택은 부실기업이 누리며 그 사이에서 관료가 생색을 낸다. 최악의 구조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때 부실기업과 금융회사를 살리기 위해 4180억달러(약 449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 중 88.5%를 3년 안에 회수했다. 한국도 1997년 외환위기 때 168조6000억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회수율은 66.2%에 불과하다. 그만큼 공적자금의 누수가 많다는 얘기다. 그런 혈세의 낭비를 최대한 줄이려면 청와대와 정부, 국책은행에서 구조조정에 관한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각성해야 한다.
이들은 "내 돈이라면 그렇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예"라고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구조조정이 남의 돈으로 선심을 쓰는 일이어서 그렇다.

y1983010@fnnews.com 얌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