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스트리트] 페이고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아파트 관리비에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냈다. 무려 307만명에게 연평균 16만원씩 돌려주자는 서민 입법이다. 성일종 새누리당 의원은 택시 유류세를 모두 면제하고, 기존 세제혜택은 4년 연장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경영난을 겪는 택시업계를 지원하자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들 법안이 시행되면 강 의원의 안은 5년간 2조4759억원, 성 의원의 안은 5년간 2조5445억원의 세수감소를 발생시킨다고 분석했다.

20대 국회가 들어서자마자 의원입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개원한 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국회사무처가 접수한 의원 발의 법안은 1000건을 훌쩍 넘겼다. 이 중 대부분은 포퓰리즘 법안이다.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보여주기식 법안을 내놓기 때문이다. 19대 국회에서 이미 폐기된 법안을 재탕.삼탕하기도 한다. 의원들은 나라 곳간 사정을 생각해 보지도 않고 굵직굵직한 선심성 법안을 내지른다. 생색은 본인이 내면서 부담은 온 국민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이 같은 선심성 법안을 예방하기 위해 최근 추경호 새누리당 의원은 재정을 투입하는 법안을 의원이 발의하는 경우 재원조달방안 제출과 심사를 의무화하는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일명 페이고 법안이다. 페이고(Pay-go)는 '번 만큼 쓴다'는 뜻의 'pay as you go'의 줄임말이다. 정부가 제출하는 법안은 이미 이렇게 시행하고 있다. 19대 국회에서도 페이고 법안이 발의됐으나 정치권에서 미적거리다 폐기된 바 있다.

미국은 페이고 원칙을 도입해 대규모 재정절감에 성공했다. 만성적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1990년 도입했다. 한시적으로 시작해 한때 폐지됐다가 2010년 재도입했다. 페이고 원칙 덕분에 2020년까지 10년간 640억달러(약 70조원)의 재정절감이 이뤄진다고 추산하고 있다. 일본도 신규 재정사업 요구 때 기존 사업을 폐지하거나 감축하도록 하는 준칙을 2004년 도입해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저출산·고령화 현상 등으로 복지수요가 늘어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폭주하는 선심성 의원입법에 대해 국회의원 스스로 나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 의회입법에 대해서도 페이고 원칙을 의무화해 놓으면 지역구 민원사업을 들이밀기가 어려워진다. 20대 국회에서는 서둘러 마구잡이식 법안 발의를 막을 수 있는 페이고 법안을 반드시 처리해주길 바란다.

junglee@fnnews.com 이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