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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부르키니 논쟁

율법에 따라 온몸을 천으로 가려야 하는 무슬림 여성들은 더운 날씨에도 물놀이할 엄두를 못냈다. 레바논 출신 호주 디자이너 아헤다 자네티가 이에 착안해 2003년 신체를 노출하지 않고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수영복 부르키니를 디자인했다. 부르키니란 눈을 제외한 신체 전부를 덮는 무슬림 여성의상 부르카와 비키니 수영복의 합성어다. 일각에서는 부르키니를 부르카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신체를 가두는 옷"이라고 비난하지만 디자이너 자네티는 "억압이 아닌 건강한 삶과 자유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잇따른 테러로 반(反)이슬람 정서가 강해진 프랑스 남부지역에서 부르키니를 금지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논란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니스.칸 등 30여곳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질서 위협, 수상 안전, 위생 등을 이유로 부르키니 단속에 나섰다. 여기에 지난 23일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프랑스를 흔들었다. 니스 해변에서 한 무슬림 여성이 경찰 4명에 둘러싸여 부르키니를 벗도록 강요당하는 장면이었다. 프랑스 최고 행정법원은 26일 빌뇌브루베시(市)의 부르키니 규제는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자유.평등.관용의 나라, 이민자의 나라 프랑스가 부르카나 부르키니 같은 이슬람 문화를 규제하는 데 앞장선 것은 아이러니다. 프랑스는 2004년 공립학교에서 부르카와 히잡 등의 착용을 금지했고 2011년에는 유럽국가 중 처음으로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복장을 금지하는 '부르카 금지법'을 시행했다. 부르카금지법은 벨기에, 네덜란드, 불가리아가 뒤따랐고 독일 등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입법 바탕엔 프랑스의 정교분리 원칙인 '라이시테(laicite)'가 깔려 있다. 시민들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종교를 드러내는 걸 자제해야 한다는 취지다.

부르키니 규제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무슬림 여성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르키니 규제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에 대한 공포와 이슬람 혐오 정서가 결합돼 불거진 측면이 있다. 프랑스의 경우 인구의 10%가량이 무슬림이다.
이민자가 기존 공동체에 잘 융화되지 않아 통제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는 듯하다.

부르키니 논쟁은 여러 인종과 종교, 문화가 뒤섞여 살고 있는 21세기 다문화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럽 전체가 이민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지라 논쟁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