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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10년 넘게 풀지 못한 숙제

[차장칼럼] 10년 넘게 풀지 못한 숙제

"규제 해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제가 한결같다."

지난 24∼25일 열린 '제14회 서울국제파생상품컨퍼런스'에 강연자로 참석한 돈 챈스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교수의 말이다. 그는 2004년 두 번째 행사를 시작으로 수차례 강연자로 참석한 '산증인' 가운데 한 명이다.

나의 대답은 이랬다. "첫 회 행사 때부터 같은 혹은 비슷한 주제일거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여전히 숙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처한 상황(과거에는 시장을 육성하는 차원, 지금은 시장을 되살리는 차원)이 조금 다를 뿐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늘 같았다.

서울국제파생상품컨퍼런스가 처음 열렸던 2000년대 초 국내 파생상품시장은 선두자리를 한 번도 내주지 않을 만큼 뜨거웠다. 2011년까지도 거래량 규모로 세계 1위였다. 기관뿐만 아니라 개인투자자의 참여도 많았다. 그러나 규제의 장벽이 높아지면서 지난해에는 12위로 수직낙하했다. 불과 4년 만이었다.

기본예탁금(선물 3000만원.옵션 5000만원) 급증, 1년간 선물거래 경험 있어야 옵션거래 가능, 사전교육(30시간) 및 모의거래(50시간) 부담 등으로 개인투자자들은 접근 자체가 힘들게 됐다. 개인투자자의 무분별한 파생상품시장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가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자들은 규제가 덜한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지로 빠져나갔다. 파생상품시장의 축소는 곧 현물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글로벌 장내 파생상품시장은 연간 10% 안팎의 성장세를 구가했다. 그중에서도 인도, 중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 지역의 파생상품시장이 급성장세를 나타냈다.

챈스 교수는 "규제를 풀려면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파생상품을 도박이나 투기로 보고, 개인투자자를 억제하는 규제가 생겨났다"면서 "잘못에 대해 벌칙이나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에 200% 공감했다. 네살배기 딸아이가 떠올랐다. 아이가 잘못한다고 해서 혼을 내면 아이는 더욱 큰 소리로 울 뿐이다. 아이에게 잘못한 것을 알려주고, 설득하고 달래는 과정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 일이다. 파생상품을 '투자'로 인식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더구나 국내에서는 파생상품이라고 하면 아직 '위험하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제는 '파생 없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으로 바꿀 때가 됐다.

파생상품시장을 활성화시켜야 '재미'가 사라진 현물시장도 살아날 수 있다.
우리 증시가 박스피의 오명을 벗고 3000포인트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파생상품을 만들어 자본시장을 자극하고, 볼륨(규모)을 더 키워야 한다. 글로벌 수준의 규제완화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제20회 서울국제파생상품컨퍼런스'도 올해와 같은 주제로 치러질까. 오는 2022년 8월이 기다려진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증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