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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 칼럼]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

최순실 사태 민심이반 가속.. 국가·사회시스템 무너져
개헌, 시스템 개조에 방점을

[강문순 칼럼]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

"부끄럽다. 여성 대통령이어서 더 참담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100초짜리 대국민 사과를 한 다음 날 만난 여교수의 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어서 성공한 대통령으로 물러나기를 바랐다고 했다. 결국 설마설마 하던 일이 사실이 됐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던 대통령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다"던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인정한 것이다. '순수한 의도'라지만 믿는 이는 별로 없다. 박 대통령이 정국돌파 카드로 꺼낸 개헌 카드도 이를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순실이라는 더 큰 블랙홀에 모든 게 빨려들어가고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불만 1순위는 불통이다. 하지만 바뀐 게 없다. 대국민 사과 일주일 만에 또 '김병준 총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국정이 멈춰선 마당에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야당과는 한마디 협의도 없었다. 이번 총리 후보는 최소한 야당이 추천한 인물이거나 여야가 합의한 인물 중에 골랐어야 했다. 사회원로.종교계까지 나서 시국선언을 하는 마당에 여전히 민심과 반대로 가고 있다. 불통이 심화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야당은 "개각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당장 반발했다. 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는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김영란법 여파로 소비가 위축된 마당에 국정농단 여파는 실물경제로 옮아가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2000 선까지 내주며 연일 하락세다. 경제의 삼두마차인 소비.생산.수출은 일제히 마이너스다. 미국 대선과 금리인상 등 대외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가 걱정이다. 경제부총리에 내정된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어깨가 무겁다.

집권 4년차 대통령의 친인척.측근 비리는 부끄러운 '전통'이 됐다. 6공 황태자, 소통령, 홍삼 트리오, 봉하대군, 만사형통 등 직선제 이후 모든 대통령에게서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이전까지는 대통령 몰래 권력을 휘둘러 문제가 됐다면 이번에는 대통령이 직접 관련됐기 때문이다.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면 공적 시스템은 와해되고 부조리와 부패가 싹트기 마련이다. 대통령의 주변에는 직언하는 사람이 없다. 청와대 비서진은 물론이고 집권여당도 마찬가지다. 문화.체육계는 물론 진리의 전당이라는 사학도 특혜입학으로 얼룩졌다. 이화여대는 130년 역사상 처음으로 총장이 중도 퇴진했다. 아무런 공식 직함도 없는 중년의 여성한테 나라 전체가 농락당한 꼴이다.

우리는 1970~1980년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압축성장은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그래도 87년체제 이후 30년, 민선 정부를 거치며 상처는 치유되고 낡은 국가시스템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려니 생각했다. 그 기대는 한순간에 깨졌다. 국가.사회 시스템이 통째로 무너졌다. 사상누각이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공직부문은 물론 사회 전반에 자정 능력과 견제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탓인지 되짚어봐야 한다. 기초가 튼튼했으면 이렇게 허무하게 뚫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87년체제를 접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다. 개헌 논의가 봇물을 이룰 것이다. 그 논의는 성숙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으면 한다.
학연.지연.혈연에 기대는 구태를 걷어내야 한다. 한 사람의 권력자보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튼튼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 시작은 물론 국정농단 사태의 엄정한 수사와 처벌이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