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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최순실 나비효과' 어디까지

'기승전 최순실' 국정에 후폭풍 기존 정책은 트라우마 빠져 노동개혁 등 옥석 가려야

[이재훈 칼럼] '최순실 나비효과' 어디까지

'최순실 게이트'가 대한민국을 멈춰 세웠다. 사태가 본격화된 지 한 달이 됐지만 상황은 갈수록 악화된다. 세종의 관료들은 일손을 놓고 망연자실 허탈감에 빠져 있다. 온 국민도 패닉에 빠졌다. 국정은 마비되고, 박근혜정부의 주요 정책도 엉망이 됐다. 요즘 모두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최순실 탓에…'다. 만사가 기승전최순실이요, '모든 길은 최순실로 통한다'다.

직책이 없는 '강남아줌마'가 대통령의 비호를 받아 온갖 이권에 개입하고, 국정과 정부인사 구석구석까지 관여했다니 그럴 수밖에 없다. 끝날 때쯤 됐다 싶은데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비리가 무더기로 드러난다. 반복되는 충격에 멀쩡한 사람들이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지는 '번아웃(Burn-out) 증후군'이 이 나라를 휩쓸고 있다.

최순실 사태는 일파만파의 나비효과를 낳고 있다. 행정부가 식물상태가 되면서 기존 정책도 줄줄이 멈췄다. 국회는 대통령 탄핵과 특검 등 정치 문제에만 매달리면서 예산, 세제, 주요법안 심사를 뒷전으로 미뤘다. 정부든 국회든 여론의 눈치를 보며 '최순실 흔적 지우기'에 급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박근혜정부의 간판 정책인 창조경제다. 최순실 일당이 창조경제사업에 깊이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도 큰 타격을 받았다. 서울.경기.전북 등의 내년 예산이 전액 또는 대폭 삭감됐다. 앞으로 창업 열기가 가라앉고 창업생태계 자체가 죽어버리지 않을까 업계는 전전긍긍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는 최근 최순실 일당과 관련 있는 것으로 거론된 예산 1748억원을 삭감했다. 개중에는 가상현실(VR) 콘텐츠 육성사업 예산도 있었다 한다. '최순실 예산'에 대한 묻지마 삭감 아닌지 우려된다. 이런 부분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졸속으로 이뤄진다면 '문화융성'은 아예 하지 말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야당은 자신들이 반대하는 정책에 '최순실표' 딱지를 붙이는 억지도 부리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는 법안심사에서 노동개혁 4법을 다루지 않기로 했다. 한마디로 이게 '최순실표 노동개혁'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재벌 총수들을 개별 면담하기 전 민원사항을 접수했는데 현대차그룹이 "노사 문제로 경영환경이 불확실하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노동개혁은 결국 현대차의 민원이라는 주장이다. 명백한 견강부회다. 박근혜정부가 초기부터 추진해온 노동개혁을 야당과 노동계가 이렇게 호도하는데 여당과 정부는 제대로 반박조차 못했다.

야당은 정부.여당과 대립하고 있는 법인세 인상 문제에도 최순실을 갖다댔다. "대기업이 권력에 많은 돈을 바치는 것을 보면 법인세를 더 낼 여력이 충분하다" "이런 준조세를 없애고 법인세로 내게 해야 한다"는 논리다. 준조세를 막을 장치를 마련할 생각은 않고 세금만 더 내라고 하니 말이 되겠는가. 야당은 이참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며 경제민주화 입법에 드라이브를 걸 기세다. 문제는 상법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야권이 내세운 경제민주화 법안이 규제 강화 일변도라는 사실이다.
'피해자'인 기업들을 범죄자라며 너무 몰아치는 것 아닌가 싶다.

최순실 게이트로 현 정부 정책의 상당 부분이 동력을 잃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최순실 탓으로 돌리며 기존 정책을 쓰레기통에 처박거나 '묻지마 대안 입법'을 한다면 이 또한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ljhoon@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