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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 칼럼] 한진해운 어쩔 작정인가

법정관리 들어간 지 3개월.. 후폭풍 아무도 책임 안져
이런 구조조정 다신 없어야

[강문순 칼럼] 한진해운 어쩔 작정인가

10여년 전 '이게 다 노무현 탓'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명박정부 때도 그랬다. 정권이 또 바뀌어 2016년, 역사는 반복된다. 대신 이번에는 '박근혜 탓'이 아니라 '1+1'이라는 최순실 탓이 대세다. 이번 정권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적지 않았다. 당시에는 이상했던 일들이 최순실과 그 일당들을 대입해보면 퍼즐이 풀리기도 한다. 이미경 CJ 부회장이 사퇴 압력을 받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게 대표적이다.

한진해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과정도 의혹투성이다. 지난 5월만 해도 한진해운의 회생 가능성이 현대상선보다 높았다. 당시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선대 규모나 해운업계 입지 등을 감안할 때 한진해운을 살리는 게 유리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회생의 전제조건 중 하나인 해운동맹 가입에도 성공했다. 그런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미르재단에 출연금을 적게 낸 뒤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수조원의 혈세를 투입한 대우조선해양과 달리 한진해운 회생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7조원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경고도 묵살당했다. 결국 9월 1일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최근 조 회장이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직 사퇴 압력을 받았다고 인정하면서 최순실 개입설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는 물론 펄쩍 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한진해운은 구조조정 원칙에 따라 결정한 것"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외국 전문가들은 "정치적 실수이자 고집이 경제적 상식을 압도한 사례" "최악의 선택" 등 혹평을 쏟아냈다. 회생자금 3000억원 지원을 거부했던 정부는 뒤늦게 6조5000억원 규모의 해운산업 지원책을 내놨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뒤 꼬박 3개월이 지났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관행을 깬 사례라는 의미도 있지만 잃은 게 너무 많다. 준비 안된 법정관리로 인해 물류대란이 일어났고 수십년간 쌓아온 해운 네트워크와 신뢰도는 물거품이 됐다. 기약없이 바다 위에 떠다니던 141척의 화물을 내리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 2000명에 달하는 한진해운 직원들은 길거리에 나앉거나 구조조정의 칼바람 앞에 서있다. 환적화물 감소에 따른 부산항과 지역사회 피해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소송전은 이제 시작이다. 정부가 벌여놓은 일이라고는 상상이 가질 않는다. 차라리 최순실 탓이었다고 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지 않았을까.

그러는 사이 반사이익은 고스란히 외국 선사들이 챙겼다. 한진해운의 아시아~북미 항로 점유율은 무의미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기대했던 현대상선의 점유율은 거의 제자리 수준이다. 현대상선은 해운동맹 가입도 4개월 넘게 차질을 빚고 있다. 한국 정부와 선사에 대한 인식이 나빠져 화주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양창호 KMI 원장은 현대상선이 해운동맹에 가입을 못하는 경우를 "끔찍한 일" "국적선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대주주의 부실경영이 가장 큰 책임이다. 하지만 예측가능한 후폭풍을 무시하고 밀어붙인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해운산업 청사진이라는 게 있었는지 묻고싶다. 오죽하면 무역협회가 부처 간 협업구조 미비, 비상계획 부재 등 쓴소리를 했겠나. 정부는 보통 10년 앞을 내다보고 정책을 만든다고 한다.
10년은커녕 1년, 1개월 앞이라도 내다봤으면 하는 심정이다. 아직도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 더 큰 대가를 치를 일만 남았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