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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영 칼럼] 겉도는 야권 대선주자들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 커
이재명 현상 주목해 봐야.. 개혁적인 주자가 승자 될 것

[염주영 칼럼] 겉도는 야권 대선주자들

여섯 번째 촛불시위가 열린 3일 광주 집회에 참가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은 자유발언을 신청했다. 하지만 주최 측의 거부로 무대에 오르지도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같은 날 대구 집회에 참가한 국민의당 안철수도 시민들로부터 "빠져라" 등의 야유를 들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 지연에 성난 촛불민심이 야권 대선주자들에게 번져가고 있다.

촛불광장의 민심은 처음부터 미묘했다. '박근혜 퇴진'을 외칠 때는 열기가 뜨거웠지만 야권 대선주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데면데면했다. 같은 구호를 외치지만 일체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선주자들은 기회가 왔다며 한 방을 노리고 풀스윙을 해댔다. 하지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스윙 폭이 커지면서 매번 목표지점을 훨씬 벗어났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그들만 몸이 달아 있다. 청와대를 향한 시민들의 분노가 야권 대선주자들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다. 촛불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심리적 기저는 복합적이다. 국민의 소망을 저버린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있고, 그 이면에 그런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았다는 자책감이 뒤섞여 있다. 자책감은 다음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는 자각으로 이어지고, 혹시라도 불량품을 잘못 사는 일을 되풀이할까 봐 대선주자들을 꼼꼼히 살펴보게 된다. 시민들은 4년 후에는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대선주자들이 촛불광장에서 접하는 민심은 이런 성찰이다.

야권 대선주자들은 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라며 촛불시위를 반겼다. 주말마다 광장에 나와 촛불의 기(氣)를 받고자 열심히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한 사람만 빼고 나머지 주자들은 전혀 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 결과에는 이런 점들이 잘 나타나 있다. 선두주자인 문재인의 지지율은 지난 한 달여 동안 답보상태다. 연일 상종가를 쳐야 하는 상황에서 박스권에 머물렀다. 지지세의 견고함이 주는 위안보다 확장성 부재를 노출시킨 아픔이 훨씬 클 것이다. 여권 주자로 분류되는 반기문은 지지자의 5분의 1을 잃었고 지지율 순위도 한 단계 밀려났다. 촛불집회 불참자임을 감안해도 내상이 깊었을 것이다. 야권의 다른 경쟁자인 안철수는 지지자의 3분의 1이 떨어져 나갔다. 박원순과 손학규는 저공비행을 계속하고 있다. 유일한 승자는 다크호스 이재명이다. 단숨에 반기문과 안철수를 끌어내리고 지지율 순위 2위에 올랐다.

이재명의 지지율 급상승 현상은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그는 성남시장을 두 번째 하고 있지만 아직 중앙정치 무대를 밟아본 적이 없는 신인이다. 중·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대신하고도 사법시험에 합격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음을 보여준 그의 성공신화는 이 시대 흙수저들에게 감동적인 스토리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기성 정치의 기득권 구조에 대한 불신이 시민들에게 그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도록 유도했다. 이재명 현상이 얼마나 지속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자신이 잘 해서라기보다는 기성 정치인에 대한 평가절하가 낳은 어부지리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기득권 정치를 과감히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내년 대선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박 대통령 탄핵 표결이 임박하면서 내년 6월쯤 대선을 치를 가능성이 커졌다. 너무 빨리 찾아온 대선 국면이 최순실 게이트에 이어 한국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