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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 칼럼] 이런 청문회 언제까지 봐야하나

최순실 등 핵심증인 다 빠져
모르쇠.호통 악습만 되풀이.. 위증교사 논란 등 수준이하

[강문순 칼럼] 이런 청문회 언제까지 봐야하나

1954년 6월 조지프 매카시 의원이 주도한 미국 상원의 육군 청문회는 가장 유명한 청문회로 꼽힌다. 청문회를 통해 육군에 숨어있던 공산주의자를 색출해서가 아니다. 인신공격과 막말, 호통으로 미국 사회를 겁박해온 당대의 권력자 매카시가 정치적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당시 육군 법률고문이던 조지프 웰치는 매카시의 근거 없는 거친 공격에 "무고한 젊은이를 음해하지 마라. 당신에게는 어떠한 품위도 남아 있지 않은가"라며 반격했다. 미 전역에 생중계된 청문회에서 이 발언은 반향이 컸다. 그해 12월 상원은 매카시에 대한 불신임을 결의한다. 의원직은 유지하지만 따돌림을 당한 것이다. 실의에 빠진 그는 술로 세월을 보내다 3년 뒤 48세로 세상을 떠났다.

"법인세율을 20%대로 낮추고 해외수익의 본국 송금 세율도 35%에서 한자릿수로 낮춰야 기업이 현금을 미국으로 가져올 것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가 2013년 5월 미 상원 역외탈세 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1달러의 세금도 떼먹지 않았다. 낡아빠진 잣대로 디지털시대의 기업을 옥죄지 마라"는 말도 했다. 그러자 다수 의원이 "미국의 낡은 세법을 고쳐야 한다"며 그를 두둔했다.

장장 229년, 미국의 청문회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장면이다. 1787년 헌법 제정 당시부터 청문회를 열어 온 미국은 청문회의 원조 격으로 안정된 제도를 자랑한다. 여름휴가철, 추수감사절, 연말연시 등을 빼고 1년 내내 청문회가 열린다.

국회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가 끝났다. 이달 초 재벌청문회로 시작한 5차례 청문회는 증인들의 모르쇠 답변, 의원들의 부실한 준비, 핵심 증인 불출석 등 악습이 되풀이됐다. 국회가 불출석 증인 36명에게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지만 이를 받고 출석한 증인은 장시호씨 한 명뿐이다. 국정농단 사태의 진실을 파헤치기를 기대했던 국민은 청문회 중계를 보고 되레 울화통을 터뜨렸다. 오죽했으면 법률미꾸라지, 국민밉상이라는 비아냥이 나왔을까.

더 한심한 것은 국회의원들이다. 강제수사권이 없어 제한된 정보와 자료로 청문회에 임해야 하는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의원은 호통, 조롱, 면박을 쏟아내는 데만 주력했다. 예리한 질문도 없이 언론에 보도된 의혹을 되묻는 수준에 그쳤다. 심지어 일부 의원은 위증교사 논란에 휘말렸다. 대개 여당 의원들이 청문회에서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증인과 접촉해 미리 문답의 시나리오를 맞췄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처음이다. 특검에 수사 의뢰가 이뤄진 만큼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여러모로 한계를 드러낸 청문회였다. 지난 9월 이른바 서별관회의 청문회 때와 판박이다. 이제 더는 청문회 제도 개선을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해법은 이미 다 나와 있다. 핵심은 역시 증인의 출석부터 확보하는 것이다. 출석요구 절차도 쉽게 바꿔야 한다. 위증죄로 처벌하는 선례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처벌기준을 강화하고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청문회에 참여하는 의원 수를 확 줄여 발언 기회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청문위원의 조사권도 확대해야 한다. 이 정도만 보완돼도 실속 청문회가 될 것이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청문회를 준비하는 국회의원들의 자세다. 5공청문회로 전국구 스타가 된 노무현 의원은 결국 대통령까지 올랐다. 그 반대편에 매카시가 있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