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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이재용 영장에 퇴짜, 당연한 결과다

특검 무리한 수사에 제동.. 여론 아닌 법리 존중해야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상대로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19일 기각했다. 이 부회장은 뇌물공여, 횡령, 위증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법원은 뇌물죄의 대가성 등이 뚜렷지 않다고 봤다. 굳이 구속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자 특검은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정치권에서도 "법이 정의를 외면하고 또다시 재벌 권력의 힘 앞에 굴복한 것"(이재명 성남시장)이란 반응이 나왔다. 사이버 공간에선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를 비판하는 글도 여럿 보인다.

법원은 사법정의를 책임진 최후의 보루다. 일단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는 게 옳다. 특검은 조 부장판사의 결정에 반발하기 앞서 스스로를 돌아보기 바란다. 무엇보다 행여 여론에 편승해 꿰맞추기 수사를 하지는 않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상식적으로 뇌물은 약자가 강자에게 먼저 주는 게 상례다. 강자는 그 대가로 약자에게 편의를 베푼다. 만약 강자가 먼저 윽박질러 돈을 빼앗으면 그건 갈취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19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개 보면 재벌 회장들은 대통령 앞에 오면 고양이 앞에 쥐가 된다"고 말했다. 재벌 회장은 약자, 대통령은 강자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성사시켜 달라고 먼저 대통령한테 청탁을 넣은 적이 없다. 거꾸로 권력이 먼저 최순실 일당에 대한 지원을 삼성에 요구했다. 뇌물죄가 성립될 수 없는 구조다. 그런데도 특검은 뇌물죄를 적용하려 애썼다. 법원은 바로 여기에 제동을 걸었다.

정치권의 반응은 거칠다. 이재명 시장은 페이스북에 "차기 대통령은 재벌 해체에 정치생명을 걸어야 한다"고 썼다. 법원 판단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앞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면 다음은 혁명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라를 이끌겠다는 지도자들이 이처럼 사법부의 권위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는 바른정당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이번 결정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다"고 한 것이 온당해 보인다.

삼성은 긴장을 늦출 때가 아니다. 이 부회장이 구속을 면했다고 다 끝난 게 아니다. 앞으로 이어질 긴 재판에 대비해야 한다. 신인도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미국 자동차 전자장비업체 하만 인수도 깔끔하게 마무리짓고, 갤럭시노트7 발화 원인도 명쾌하게 밝혀야 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반기업·반삼성 정서가 또 확인됐다. 여론은 국내 최대기업 삼성에 단순한 기업 이상의 특별한 역할을 바라는 것 같다. 경영권 승계를 앞둔 이 부회장이 깊이 생각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