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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유라 패딩과 무책임한 언론

[기자수첩] 정유라 패딩과 무책임한 언론

정유라 패딩, 이재용 립밤, 최순실 신발. 모두 비선실세 최순실 사태 이후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뜨겁게 달군 검색어들이다.

지난해 10월 최순실씨가 검찰에 출두했을 때 입구에서 취재진에 둘러싸이면서 신고 있던 신발이 벗겨지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틈틈이 립밤을 바르는 모습이 방송됐다. 최근에는 최씨의 딸 정유라씨가 덴마크에서 체포될 당시 입고 있던 패딩이 취재진 카메라에 포착됐다.

언론은 연일 '최순실씨 신발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재용 부회장이 사용했던 립밤의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 '정유라가 입은 패딩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는 식의 기사를 쏟아냈다. 기사에는 블레임룩(Blame Look)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였다.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해 논란이 되는 사람들의 패션을 따라하는 현상이라는 설명과 함께.

여기서 의문이 든다. 실제 정유라 패딩을 따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잠깐의 호기심은 가질 수 있겠지만 오히려 언론이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일 뿐 그 사람을 닮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역시 비판이 주를 이룬다. '구질구질한 기사 좀 올리지 마라' '그렇게 기사 쓸 게 없냐' '쓰레기만도 못한 낚시질 그만해라' 등 언론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로 뜨겁다. 블레임룩이란 조어로 그럴싸하게 포장한 뒤 기사를 생산하지만 이미 국민들은 의미 없는 기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난의 댓글이 많아질수록 기사 클릭수는 높아진다. 그러면 클릭수를 높이기 위해 블레임룩을 들먹이며 저급한 관심을 유도하는 기사는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사건의 본질과 상관 없는 블레임룩에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 사건과 논란 당사자에 대한 관심이 흐려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어떤 범죄를 저질렀고 어떤 특혜를 받았는지에 대한 관심보다 상품에 관심이 모아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언론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만한 기사를 작성해 사람들이 보게 하는 블레임룩에 길들여지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공익과는 상관없이 단지 클릭수를 높이기 위해 블레임룩을 추구한다면 대중으로부터 블레임 받아 마땅할 것이다.

jun@fnnews.com 박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