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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미국] FTA폐기 안하겠지만, 한국산 수입은 줄일 듯

국내 수출 비상
한.미 FTA 체결 이후 미국 무역수지 적자 증가세
중국과의 통상마찰 심화땐 중국에 중간재 수출하는 우리 기업 타격도 불가피

[트럼프의 미국] FTA폐기 안하겠지만, 한국산 수입은 줄일 듯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가뜩이나 불확실성 확대와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 심각한 '빨간불'이 켜졌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보호무역주의.자국이기주의가 현실화되면 통상압력이나 무역보복 등 어떤 식으로든 한국 경제에 상당한 타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미국과 중국의 통상갈등까지 심화될 경우 이들 국가에 중간재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한국 수출의 대미.대중 의존도는 39%다. 일단 우리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등 극단적인 선택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고 상황별 대응책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우리에게 던져진 가장 큰 숙제 중 하나가 '불확실성'인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 100일 전략 등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수립한 대책을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도 제기된다.

■불편한 '대(對)한국 무역적자'

트럼프 정부의 한국에 대한 통상정책 기조는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죽이는 거래'(Job killing Deal)'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은 곧 자국의 이익 침해다.

트럼프는 이 때문에 후보시절부터 FTA 무용론을 비롯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등을 꺼내들었다. "끔찍한 무역협정을 완전히 재협상할 것" "무역에서 나는 미국의 국익을 최선에 둘 것이다. 내 임기 동안 미국인에게 불리한 어떠한 무역협정도 체결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는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공약 관철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우리나라와 경제 관계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FTA가 체결된 지난 2012년 이후 미국의 대한국 무역수지 적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상무부가 집계한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 규모를 보면 FTA가 발효된 2012년에 77억달러, 2013년 93억달러, 2014년 133억달러, 2015년 283억달러 등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한·미 FTA가 체결되지 않았을 경우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는 현재보다 더욱 크게 증가했을 것이라는 미국무역위원회의 전혀 다른 보고서도 있다. 또 한·미 FTA를 통해 157억달러의 무역수지 개선 효과를 거뒀으며 특히 미국산 자동차의 수출 규모는 한·미 FTA 이전에 비해 무려 200%, 농수축산물은 31% 증가했다.

종합하면 트럼프 정부가 이러한 긍정적 측면을 외면한 채 '한·미 FTA 폐기'라는 극단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낮을 거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대신 무선통신기기, 냉장고, 승용차, 타이어 등 수출액 대비 대미수출액 비중이 큰 품목을 손보자고 나설 수는 있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수출액은 664억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13.4%를 차지했다.

만약 한국경제연구원은 미국의 뜻대로 한·미 FTA가 원점에서 재협상된다면 2017~2021년 사이 수출은 269억달러, 일자리는 24만개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중국과 통상갈등 '악재'

트럼프 정부 출범의 또 다른 악재는 중국과의 통상갈등이다. 자국 통화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해 수출경쟁력을 높이거나 수출품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제품 위조 및 저작권 침탈 행위 등은 모두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트럼프는 이러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 수입품에 대해 45% 관세를 부과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계획임을 밝혀왔다.

이렇게 되면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길 희망하는 중국도 대응에 나설 것이고 이는 결국 양국 간 통상마찰 심화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 정부의 고민은 이처럼 양국의 갈등이 한국 경제에 미칠 후폭풍이다. 중국이 미국으로 수출을 하지 못하면 중국에 중간재 등을 수출하는 우리 기업의 타격도 불가피해서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 중 중간재 비중은 2015년 기준 73.4%였다.

이상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은 "환율조작국 지정, 관세부과 등이 이뤄지면 우리 중간재 수출 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트럼프 취임사에서 중국 관련 발언을 관심있게 지켜봐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환율은 중국뿐 아니라 우리도 신경을 써야 한다. 트럼프 정부가 무역적자의 원인 중 하나로 교역국의 환율조작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대한국 무역적자에 대한 피해의식이 크다.


우리 정부는 이날 우태희 산업부 2차관 주재로 '제5차 대미 통상 실무작업반' 회의를 열고 미국 신정부의 통상정책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특이상황 발생 시 대응할 수 있도록 민관 공동대응체계를 강화키로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산업연구원(KIET)은 각각 미국 신정부의 통상정책을 전망.분석하고 우리 산업에 미칠 영향을 업종별로 검토한다.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에 대해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마련했지만 (미국의 발표 전에) 먼저 공개할 수 없다"면서 "'트럼프 100일 전략' 등 핵심정보는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