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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일자리 대통령 감별법

세계는 일자리 창출 전쟁, 대권주자들은 헛공약 남발
구체적 청사진도 내놓길

[이재훈 칼럼] 일자리 대통령 감별법

지금 세계는 그야말로 일자리 전쟁 중이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세계화란 거대한 물결 속에 일자리를 빼앗기게 된 소외계층의 분노를 반영한 현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미국 제품을 사라, 미국인을 고용하라"고 일갈했다. 그가 보호무역을 표방하고 글로벌기업의 팔을 비틀어 투자를 이끄는 것도 결국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양적완화 정책과 친기업정책 등 아베노믹스로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의 일본을 만들었다.

일자리 창출 문제는 우리의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최악의 고용한파에 사실상 실업자는 450만명을 넘어섰고, 청년실업률은 10%에 육박했다. 만병의 근원이 청년실업이라 할 만하다. 조기대선이 예상되면서 대권주자들이 앞다퉈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일자리 공약은 이번 대선의 판세를 좌우하는 쟁점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상황 인식이 안이한 건지, 준비가 부족한 탓인지 이들의 일자리 처방은 너무나 구태의연하다. 재정을 투입해 공무원 채용을 확대하겠다느니,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느니 하는 것들이다. 현재 가장 구체적으로 일자리 공약을 발표한 주자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전문가 수백명의 조언을 받아 만들어냈다는 공약인데도 고민의 흔적을 읽을 수가 없다.

문 전 대표는 공공부문 81만개,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50만개 등 모두 131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문 전 대표는 재원대책에 대해 "정부의 고용관련 예산 17조원 중 10조원이면 공무원 50만명을 고용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이건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다. 근로시간 단축은 임금삭감과 일자리 나누기가 전제돼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말이 없다. 게다가 그의 공약은 2012년 대선의 판박이다.

기본소득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말한 이재명 성남시장의 경우 성장과 소득.일자리의 인과관계를 도치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시장과 기업에서 창업과 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일자리가 가장 유효한 일자리"라고 했으나 세부적인 공약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재명 시장과 남경필 경기지사가 말한 모병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우리의 안보 상황에는 도저히 적용할 수 없다. 안철수.유승민 의원의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도 허망하다.

앞으로도 많은 후보들이 일자리 공약을 구체화해 내걸 것이다. 줄잡아 세 가지 관점에서 공약을 해석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일자리는 누가 만드는 것인가. 물론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막대한 세금이 투입돼야 하며 일자리의 연속성도 보장하기 어렵다. 일자리, 특히 양질의 일자리는 기업과 시장이 만드는 것이다. 기업이 산업을 일으키고 투자를 해서 일자리를 늘리도록 하는 게 기본이다.

둘째, '무엇을'보다는 '어떻게'가 중요하다. 일자리 숫자를 늘리기에 급급하다 보면 세금 퍼붓기식 억지정책이 나온다. 구체적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셋째, 규제는 일자리의 적이다.
산업을 활성화하려면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규제 1건 도입 시 2개를 철폐하는 '원 인, 투 아웃' 제도를 시행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재벌개혁을 외치며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법, 근로기준법 등 국회에 계류된 일자리법안의 처리를 외면해온 대권주자들이 일자리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