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우리만 무장해제하는 상법 개정 안돼

관련종목▶

유일호 "방어수단 병행해야".. 무역업계 81% 신중·반대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야권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경영권 방어수단의 병행입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 부총리는 이날 대한상의 최고경영자 초청 강연에서 "상법 개정안에는 외국 투기자본들이 국내 기업의 경영안정성을 위협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면 경영권 방어제도도 함께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 등은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 시도가 있을 때 대주주에게 경영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를 두고 있다. 대주주 지분에 대해 보통주의 수십~수백배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 기존 주주에게 싼값에 신주를 배당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는 포이즌필 등이다. 유 부총리의 입장 표명은 상법 개정으로 적대적 M&A의 공격수단이 강해지는 만큼 기존 주주의 방어수단도 강화되는 것이 시장논리에 부합한다는 지적이다.

상법 개정안은 의결권을 몰아서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집중투표제와 대주주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하는 감사 분리선출제, 모기업 주주에게 자회사 임원에 대한 소송권을 부여하는 다중대표소송제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제도가 지배주주 전횡을 막고 소액주주의 권리 보호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영권을 위협해 단기 고수익을 노리는 외국계 헤지펀드들에 의해 악용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 문제다.

투기자본들은 투자를 통한 기업 성장보다는 단기실적 극대화에 의한 고배당 실현을 추구한다. 우리 기업들은 이미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외국인 주주의 담합을 통해 헤지펀드가 이사회에 진출하면 경영권 방어에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KT&G는 칼 아이칸 방어에 2조8000억원을 썼고, SK는 소버린 사태 때 1조원 이상의 대가를 치렀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실시한 무역업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1.3%는 상법 개정에 반대하거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찬성 의견은 8.5%에 불과했다. 야권이 2월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하고, 경영권 방어제도도 함께 도입돼야 할 것이다. 경영권 방어수단 없는 상법 개정은 외국 투기자본 앞에 우리 기업들을 무장해제시켜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