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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영 칼럼] 서글픈 권한대행 전성시대

황교안 대선 출마 저울질
헌법이 부여한 소임 깨달아 국정공백 최소화 전념해야

[염주영 칼럼] 서글픈 권한대행 전성시대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국회에서 야당 의원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황교안 총리가 대선에 출마하면 부총리가 책임을 지게 되는데 직함이 어떻게 되느냐." 유 부총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직무대행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됩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길고 해괴한 직함이 국정위기의 심각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유일호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직무대행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국정이 과연 순탄할까. 이런 상황까지 가지는 않으리라 믿고 싶다. 하지만 황 권한대행의 얼굴에 스치는 알 수 없는 미소와 자유한국당의 끝없는 러브콜을 접하면 걱정이 앞선다.

지금 나라 안팎에는 초대형 이슈들이 쉴 새 없이 불거지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신행정부에서는 보호무역 압박에 이어 북한을 선제 타격하는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우리 방어수단을 일거에 무력화하는 개량형 미사일을 발사했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독살도 심상찮다. 중국은 연일 무역보복 조치를 퍼붓고, 일본은 외교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안보와 경제를 한 방에 뒤흔들 수 있는 중대 사안들이 밀려오는데 우리는 열중쉬어다. 국력을 결집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주도해나갈 구심점이 없다. 그저 탈 없이 지나가기만 바랄 뿐이다.

지난해 11월 법무부를 시작으로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부, 헌법재판소 수장 자리가 비어 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대행이란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객이 임시로 일을 봐주는 것이다. 잠시 머물다 가는 대행자가 인사권이나 주요 정책의 결정.변경 등 핵심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래서 국가의 중요 업무들이 하나둘 뒤로 미뤄지다 보면 결국에는 타이밍을 놓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국정공백 상태가 벌써 몇 달째 계속되고 있다. 이로 인한 국익 손실이 막대하다. 나는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에 전국의 축산농가들이 맥없이 당하는 것을 보면서 국정공백이 얼마나 심각한 폐해를 낳을 수 있는지를 실감한다. 눈에 보이는 가축전염병에도 속수무책인데 하물며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쌓이고 있을 국정공백의 피해는 얼마나 클까.

그런데 이 엄중한 시국에 국정 책임을 대신 짊어진 황 권한대행은 대권주자 행보를 하느라 바쁘다. 지난주 열린 규제개혁 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권한 막걸리를 마시며 국민과 스스럼 없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규제개혁 국민소통 한마당의 날'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이 행사는 공영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국정에 전념하는 것이라면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지지율 경쟁에 대통령 권한대행의 직위를 활용하는 것이라면 반칙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시계'까지 만들어 돌린 것을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황 대행이 출마를 결정한다면 국정은 대통령에서 권한대행을 거쳐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에까지 넘어갈 판이다.
5000만 국민의 생존권을 책임지는 대통령 자리가 몇 달이 멀다 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녀도 괜찮은 걸까.

황 대행이 전성시대를 맞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이의 마음은 서글프다.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황 대행은 국난의 시기에 뜻하지 않은 행운을 붙잡았다. 그 행운에 감사하며 소명감을 갖고 국정공백 최소화에 전념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대중의 지지에 부디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