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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카리브에서 찾은 진주

[차관칼럼] 카리브에서 찾은 진주

최근 필자는 36년간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카리브 지역의 섬나라 자메이카를 방문했다. 흔히 카리브 하면 청명한 하늘과 코발트블루빛 바다, 흥겨운 레게음악을 떠올리며 친근한 느낌을 갖게 되지만 이 지역과 우리의 외교관계는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리적으로 먼 데다 긴급한 외교 현안이 많지 않았던 카리브 지역과 우리나라가 보다 긴밀한 협력관계로 발전시킬 기회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의 국제적 위상에 더해 카리브 지역의 중요성을 생각해볼 때 이 지역과의 협력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지난 2월 말 자메이카에서 우리나라 주도로 카리브공동체(CARICOM·카리콤)와 최초의 '한·카리콤 고위급회의'를 개최했다.

1973년 14개 카리브 도서국가가 지역통합을 목표로 창설한 카리콤은 인구나 경제규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지만 유엔 전체 투표권의 7.3%를 차지하는 중요한 지역블록이다. 기후변화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의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2013년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2015년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및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카리브 국가들을 연이어 방문하기도 했다.

카리콤은 국제무대에서 중요한 지지기반이자 안정적인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시장으로서 의미가 있다. 또 인프라.에너지.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등의 개발 수요가 높아 우리와의 협력잠재력도 큰 만큼, 카리브와의 협력 강화는 우리의 신시장 개척 기반을 확대하는 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와 카리브 국가들이 역사적.지정학적으로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영국.프랑스 등 서방의 식민통치를 받은 카리브 국가들은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독립과 자유를 쟁취해 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카리브해를 둘러싼 강대국들과 인접한 지리적인 특수성으로 인해 주변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동시에, 대외관계 다각화를 적절히 조화시켜야 한다는 외교적 환경에 놓여 있다는 점도 우리와 유사한 면이다. 또 우리에게 북한이라는 상시적인 안보 위협이 있는 것처럼 카리브의 소규모 도서국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및 기후변화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번 한·카리콤 고위급회의는 이와 같은 우리와 카리브 지역 간 유사성을 바탕으로 상호 협력 의지를 확인하는 한편, 카리브 지역의 최대 현안인 기후변화와 식량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방안을 고위급에서 모색했다는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 채택된 '한·카리콤 공동성명'을 통해 최초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카리브 국가들의 강력한 공동 입장을 이끌어냈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는 친구들을 얻게 되는 성과도 거두었다.


이번 자메이카 방문을 통해 필자는 아름다운 카리브의 이면에는 조화로운 발전과 평화를 위한 카리브 국가들의 숨은 노력이 있다는 것과, 지속가능한 평화와 번영을 위해 우리와의 협력을 기대하는 그들의 희망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카리브해의 조개가 오랜 기간 고통을 참아내며 만들어내는 아름답고 강인한 진주처럼, 우리와 지구 정반대편에 살고 있는 카리브 국가들은 과거의 아픈 역사, 현재의 기상이변과 이로 인한 자연재해 등을 이겨내면서 밝은 내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가는 길에 우리도 함께한다면 한·카리브 관계는 상생과 호혜적 협력을 향해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