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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재무학회칼럼] 선진국 진입을 위한 제도적 접근

[한미재무학회칼럼] 선진국 진입을 위한 제도적 접근

40년 넘게 미국에 살면서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한 조국을 보며 긍지를 느낀다. 동시에 전공이 국제경영학이라 객관적으로 한국을 보는 직업병이 생겼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갈등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하다.

한국은 2016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7633달러로 세계 29위, 선진국 문턱에 이르렀다. 경제규모로는 세계 11위이다. 세계은행과 유엔은 이미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모간스탠리 등 민간경제기관은 아직 개발도상국으로 취급한다. 1인당 소득이 비슷한 이스라엘, 스페인 등을 선진국으로 분류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경제 수준말고 무엇이 선진국이 되기 위한 조건인가.

이 문제는 수익대비기업가치(PE)가 낮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관계가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북한 리스크와 조직지배구조 문제에서 기인한다. 북한과 기업지배구조는 따로 언급할 사항이며 지금은 국가지배구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국가 차원의 지배구조는 의사결정 과정에 관련된 법과 제도와 국민의식을 포함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는 조직의 성과는 제도의 효율성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였다. 세계은행의 국가별 지배구조 인덱스는 제도의 질(Institutional Quality)을 정부 효율성, 법 규정, 법치제도, 참여와 책임, 부패통제, 정치적 안정 등 여섯가지 기준으로 평가한다. 한국은 부패통제(69위)와 법치제도(40위)에 문제가 있다. 선진국이 되려면 국내총생산(GDP)뿐 아니라 제도개선이 필수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탄핵은 '제도의 질'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다. 대통령 탄핵은, 지도자 선출제도의 효율성 문제와 언론·사법제도의 감시기능 문제, 갈등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조정하지 못한 사회·정치제도의 경직성 문제를 내포한다. 국가 리스크 평가기관도 정부 교체 방법의 정당성을 중요한 척도로 삼고 있다.

물론 탄핵은 헌법에 규정된 합법적 방법이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은 필연적으로 정치와 사회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따라서 여론 향배와 관계없이 합법적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관련인의 수사와 재판을 통한 사실규명이 있기 전에 초스피드로 국회에서 탄핵소추된 것은 절차적 합법성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국회가 탄핵을 서두른 것은 촛불집회의 압력 때문이다. 촛불집회가 커진 이유는 사실확인 절차를 생략한 채 경쟁적으로 의혹을 양산한 언론에 책임이 크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법절차보다 광장 민심을 따라간 것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적 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민심에 최고권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논리는 현대국가의 기본인 대의민주주의에 어긋난다. 민심은 가변적이며 측정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고 무엇보다 합법적인 절차가 아니다. 군중의 힘은 프랑스혁명, 4.19 등 역사발전에 도움이 된 경우가 있으나, 소크라테스 처형, 중국 문화혁명, 한국 광우병 파동 등에서는 그 과오가 증명되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선 건국 후 탄핵으로 물러난 대통령이 없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하원 본회의 투표 전 사임했다. 워터게이트 수사 시작 후 2년이 넘은 때였다. 미국은 속도보다 절차적 합법성을 존중하는 전통이 있다. 잔여 임기를 계승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닉슨 사면은 당시 일부 비난이 있었으나 갈등과 후유증을 치유한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다.

헌재가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렸다.
사안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떠나 최고재판소 판결에 승복함은 자유민주주의의 전제인 법치제도의 기본이다. 동시에 한국은 탄핵이나 혁명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부가 바뀌는 후진국 현상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갈등과 이견이 광장과 탄핵보다 법치와 선거의 틀 안에서 수렴되고 조정될 때 진정한 선진 한국은 이룩될 것이다.

최종무 美 템플대학교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