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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시장은 공짜가 아니다

[fn논단] 시장은 공짜가 아니다

십수년 전의 일이다. 미국의 월마트에 납품했던 국내 중견기업인 L회장은 거래처 담당자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당시에 자유시장경제 및 기업가정신을 어떻게 청소년들에게 효율적으로 전파하는가를 놓고 시합하는 대학생 경연대회가 있었다. 그에 필요한 재원은 월마트, 코카콜라, P&G 등 많은 미국의 유수 기업들이 후원했다. 이런 경연대회에 한국 대학생들도 참여시켰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고 L회장께서 ㅈ학회에 협조를 요청해왔다. 필자가 그 경연대회에 참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필자 생각에 우리나라 대학생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위하여 몇몇 기업인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고 협조했는데 호응이 시큰둥했다. 대부분의 기업인들 반응은 돈 버는 사업도 아니고 그런 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시장'이라는 인프라는 하늘에서 떨어진 공짜이고 주인 없는 무주공산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먼저 쓰는 사람이 임자이고 유지비용이 필요 없는 자유재(공짜)로 생각하는 듯하다. 시장이 잘 작동되어야 기업인들이 맘껏 기량을 펼칠 수 있고 그 혜택의 대부분은 기업인들에게 돌아간다. 만일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되지 않으면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도 기업인들이다. 제4차 산업혁명 속에서 미래 신성장 산업이 막 태동되고 있다. 과거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새로운 기술을 장착한 상품 및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로봇, 자율자동차, 드론, 핀테크 및 블록체인, 줄기세포치료 등 다른 나라에선(중국에서조차 가능함) 활발히 투자되는 것이 국내에선 규제에 묶여 지지부진하다. 이런 애로현상은 우리 사회 깊이 만연된 반기업정서 및 반시장정서와 깊은 관계가 있다.

최근에 드러난 일부 기업들의 정경유착 징조, 얼마 전에 발생된 '비행기 땅콩 사건', 무분별한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입, 중소기업 납품가 후려치기 등으로 반기업정서가 날로 팽배해지고 있다. 정부도 이제는 기업들에 준조세 성격의 기부금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또한 경제 양극화의 심화로 반시장정서까지 가세하고 있다. 반기업정서 및 반시장정서가 팽배해질수록 규제적인 조치들이 뒤따르게 된다. 입법부는 여론의 정서를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지만 공짜는 아니다. 잘 유지하려면 비용이 든다. 골프장의 잔디를 가꾸듯이 '시장'도 가꿔야 한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인 저커버그 회장이 지분의 99%를 사회에 환원한다고 할 때 얼마나 큰 박수를 받았는가! 미국의 부자들이 거액의 기부를 기꺼이 하고 상속세 폐지에 왜 반대하는가? 반기업정서를 잠재우기 위한 노력(투자)이다. 그래야 시장에서 자율적인 사업의 기회가 확보된다. 박수 받고 존경받는 기업인이 많이 나올수록 반기업정서도 그만큼 누그러진다. 개별 사업투자만 투자가 아니다.
시장기구가 잘 작동되도록 유지하는 데도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 기업인들도 미국이나 유럽 기업인들처럼 영악해졌으면 한다. 시장이라는 '밭'을 잘 가꿔야 신성장 산업의 결실을 풍성히 거둘 수 있다.

이윤재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