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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석유 패권 뺏겼다

가격상승 위한 감산이 발목 국제석유시장 점유율 급감
美시장서 셰일석유에 밀리고 유럽선 이란·이라크가 추월
아시아선 러시아에 1위 내줘

사우디 석유 패권 뺏겼다

【 로스앤젤레스=서혜진 특파원】국제 석유시장을 쥐락펴락하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시장 지배력이 흔들리고 있다. 국제유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해 11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합의에 따라 원유생산을 대폭 감소하면서 미국과 러시아, 이란, 이라크 등에 시장 점유율을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원유수출국이었던 사우디가 유가안정을 위해 급격한 감산에 나서면서 미국 셰일석유 생산업체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으며 미국 시장으로부터 철수를 서두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지난주 사우디의 대미 원유 수출 물량은 전주보다 하루 42만6000배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감소폭은 OPEC 감산합의가 이뤄진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크다. 1990년대 미국 원유수입에서 사우디가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에 달했지만 지난해 11월에는 12%까지 떨어졌다.

미국 셰일석유 생산업체들은 OPEC의 감산에 따른 국제유가의 반등을 계기로 시장에 복귀하면서 하루 평균 생산량을 41만2000배럴 가량 늘렸다. 이에 따라 미국의 원유수출량도 올들어 하루 평균 100만배럴 이상으로 급증했다.

소식통들은 사우디가 성장 잠재력이 큰 아시아에 주력하면서 대미 수출이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우디는 아시아 시장에서도 러시아 등에 밀리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사우디는 세계 최대 원유소비국 중 하나인 중국 시장에서 러시아에게 1위 자리를 뺏겼다. 사우디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015년 15%에서 지난해 13%로 하락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사우디는 유럽의 주요 원유 소비국인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에서도 OPEC 회원국인 이란과 이라크에 뒤쳐졌다. 이들 3개국에 대한 사우디의 원유수출량은 지난해 7월부터 10월 사이 11% 줄었다. 반면 지난해 12월 유럽에 대한 이란의 원유수출량은 지난해 8월보다 45% 급증했다.

사우디가 이처럼 시장 곳곳에서 후퇴하고 있는 것은 수년간 지속된 저유가로 인한 정부의 재정 압박 심화와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위해 고유가를 유도해야 하는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장 마크 리크리 제네바 안보정책센터 리스크분석 대표는 "사우디는 내외부적으로 극심한 압력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우디는 지난 수년간 고유가보다 시장 점유율을 우선시했다.
이에 따라 2014년 유가가 폭락했을 때도 OPEC의 감산 노력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고 2년 전에는 미국의 셰일 석유회사들과 경쟁하기 위해 증산을 고집해왔다.

사우디의 최근 산유량은 지난해 10월보다 하루 80만 배럴이 줄어든 수준이다. 이는 OPEC에 약속한 감산 폭보다 60%나 많은 것이어서 사우디가 유가 안정을 얼마나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WSJ는 지적했다.

sjmary@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