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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견본주택 앞에 선 긴 줄을 보며

[기자수첩] 견본주택 앞에 선 긴 줄을 보며

"예년 이맘때(4~5월) 주말이면 인기 단지의 견본주택 앞에는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죠. 줄이 너무 길어서 1시간 가까이 기다릴 정도였다니까요."

지난주 한 취재원과 점심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다. 건설부동산부에 배치받은 뒤 난생 처음 방문해본 한 단지의 견본주택이 상상했던 것보다 썰렁한 분위기였다는 기자의 말에 '5.9 조기대선'이 끝나면 움츠렸던 주택시장도 봄 분양 성수기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는 취재원의 말이었다. 앞으로 취재차 찾은 견본주택 앞에서 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주택시장은 여전히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견본주택은 향후 그 단지가 어떻게 지어질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우리나라처럼 '선분양제'가 관행이 된 곳에서 수요자들이 단지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다. 평균 수억에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초고가' 물건을 구매하는 만큼 수요자들은 더 체계적이고 꼼꼼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관행'이라는 그늘 아래 수십명의 수요자들은 매번 견본주택 앞에서 긴 줄을 섰다가, 우르르 몰려들어가 '관람'을 한 뒤 청약 여부를 결정하고 있는 셈이다. 일상 병원 진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전 예약'이라는 흔한 시스템 하나 없이, 붐비는 주말 등에 방문한 수요자들은 미처 얻지 못한 정보로 어느 정도 '위험부담'을 갖고 주택을 구매하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견본주택에서 보다 효율적인 정보 제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환경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주말에는 평일에 올 수 없는 직장인들이 많이 몰리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한달도 남지 않은 대선을 앞두고 각 당 후보들은 각종 부동산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후보들마다 공약은 제각각이지만, 수요자 위주의 부동산 시장으로 가야 한다는 데는 모두 뜻을 모은 상황이다. 일부 후보들 사이에서 나온 '후분양제 의무화'도 당장은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지만, 수요자들의 권리를 높여야 한다는 취지로 생긴 제도 중 하나다. 수요자를 위한 다양한 주택 정책이 쏟아지고 있는 만큼 이제라도 공급자 위주로 운영되는 '관행'을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해야 하지 않을까.

jyyoun@fnnews.com 윤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