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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Culture] 1세대 백색화가 권영우 'Various Whites' 30일까지

1962년 추상회화 본격 시작 동.서양 경계 허물었다 평가
미공개 백색 한지.소품 등 소격동 국제갤러리서 전시

[yes+ Culture] 1세대 백색화가 권영우 'Various Whites' 30일까지
권영우 작가

[yes+ Culture] 1세대 백색화가 권영우 'Various Whites' 30일까지
무제(P75-7), 1975, 패널에 한지

백색의 캔버스 위에 뽀글뽀글 기포가 솟아올라 팡 터진 것 같다. 가까이서 다가가 보니 구멍을 뽁뽁 뚫은 하얀 화선지를 캔버스 위에 붙인 흔적이다. 옛 한옥 집 창에 발린 화선지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듯 뚫기도 하고 때로는 송곳으로, 칼로, 아니면 나무를 못처럼 깎아 다양한 흠집을 캔버스 위에 냈다.

2014년부터 단색화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 미술시장, 그 기원에 백색화(白色畵)가 있다. 권영우(1926~2013)는 그 백색화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작가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권영우는 서울대 미대 첫 신입생으로 입학해 동양화를 전공한 '해방 1세대' 작가다. 전통을 중시하는 동양화단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쩌면 전통적인 수묵화를 그렸어야 했던 상황이었지만 그는 "그런 것이 체질에 맞지 않았다"고 생전 인터뷰에서 회고한 바 있다.

괴짜 같은 그는 결국 자신만의 길을 향한 긴 여정을 떠난다. 1958년 초현실주의적인 화풍의 '바닷가의 환상'을 선보이며 화단에 파란을 일으키고 추상의 새로운 경향을 주도한다. 그리고 그 작품으로 같은 해 국전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늘 하얀 종이가 있었다.

"화판 하나를 내가 만들고 내가 땜질해서 뚫어진 데는 고치고 하다 보니까 어떤 때는 화선지 갖다가 바르기도 하고 했었어요. 근데 땜질하려고 했다 붙였던 화선지들이 이루어내는 어떤 하모니라 할까 아주 재미난 걸 발견한 거예요. 아! 이거 참 재밌다. 그때부터 난 종이 붙이는 작업을 시작한 거예요."

결국 그는 1962년 필묵을 버리고 화선지를 주요 매체로 콜라주를 하는 추상회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처음엔 그저 화선지를 발라 붙이는 작업이었다. 어두운 바탕을 가진 캔버스 위에 하얀 화선지를 한장 발라 밑색이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을 담아냈다. 종이의 겹을 더할수록 캔버스 안에서 다양한 명암이 드러났다.

그 다음은 여러 겹으로 바른 화선지 캔버스를 밀어붙이는 작업에 돌입했다. 여기저기 자연스레 생기는 돌기가 독특한 입체감을 부여했다. 그 다음으로 종이 여러 겹을 바른 후 뚫는 작업들이 시작됐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이런 작품을 보며 "이것도 동양화냐"며 쓴소리를 쏟아냈다. 하지만 권영우는 우직하게 그의 작품세계를 발전시켜 나갔다. "일단 저 나름대로 생각할 적에는 회화이지 동양화, 서양화라는 구별을 굳이 두지 말자. 기름물감으로 그렸건 서양화적인 화법으로 그렸건, 요는 그 작품이 발산하는 어딘가 그 체취가 동양적인 것을 발산할 적에 그것은 동양화다. 저는 일단 그렇게 얘기를 하고 싶어요." 동서양의 경계를 허문 회화 그 자체, 그는 이미 코스모폴리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이였다.

이후 권영우는 1978년 프랑스 파리로 넘어가 화선지에 채색을 더하기 시작한다. 화면 뒤에 조심스레 색을 더해 은은하게 젖어 나오는 모습을 표현하고, 때론 덮인 곳을 칼로 찢어 색이 배어나오게 하는 작품활동을 전개했다. 그의 작업엔 "동양의 고요하고 사색적인 선(禪)이 돋보인다"는 평이 뒤따랐다.


현재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권영우의 'Various Whites(다양한 백색)'전은 그가 파리로 가기 직전 제작한 미공개 백색 한지.소품 작업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그가 표현한 다양한 백색의 향연을 한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다.

또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생전에 촬영한 인터뷰 영상과 유족들이 보존하고 있던 작가의 친필 편지, 작업노트, 직접 사용한 작업 도구에 이르는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들을 새롭게 편집해 공개한다. 전시는 30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