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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의 눈] "아프단 말도 못하고…" 조현병, 잠재적 범죄자인가

[이혁의 눈] "아프단 말도 못하고…" 조현병, 잠재적 범죄자인가

지난해 5월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과 수락산 살인사건 등 강력 범죄가 잇따르면서 ‘조현병’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범인들이 과거에 같은 병을 앓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조현병 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경향도 존재한다.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불편한 시선이 두려워 움츠리게 되면서 치료시기를 놓친다. 용기 내서 병원을 찾아도 이미 병이 발병한 지 꽤 지나서 찾기 때문에 치료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조현병은 망상, 환각 등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정신과 질환이다. 원래는 정신분열증으로 불렀지만 이질감과 거부감을 준다는 이유로 2011년 편견을 없애기 위해 조현병으로 병명이 바뀌었다.

조현병은 치료가 어려운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사이코패스와는 다르다. 꾸준히 치료받으면 나을 수 있는 병이다. 불치병이 아닌 것이다.

[이혁의 눈] "아프단 말도 못하고…" 조현병, 잠재적 범죄자인가

■ 조현병 환자 50만 명 추산.. ‘잠재적 범죄자’ 불명예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현병 환자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0년 9만3931명, 2011년 9만 6265명, 2012년 10만 980명, 2013년 10만 2227명, 2014년 10만 4057명, 2015년 10만 6100명, 지난해 10만 6664명으로 집계됐다. 실제로는 50만 명이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조현병의 가장 큰 특징은 망상과 환각이다. 망상이 공교롭게도 ‘누군가 나를 해치려고 한다’는 것에 빠졌을 경우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으면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수가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조현병 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증상들은 치료가 잘 되고, 꾸준히 관리받으면 충분히 나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2011년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를 봐도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0.08%로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은 사람의 범죄율(1.2%)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2014년 통계에서도 2013년 범죄를 저지른 사람 128만 명 중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은 0.4%,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은 42.8%로 나타났다.

최성구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부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의학에서는 약도 안 먹고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을 완치라고 한다. 조현병은 완치가 되는 병은 아니지만, 당뇨와 고혈압같이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병”이라며 “꾸준히 치료를 받고 약을 먹으면 일상생활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혁의 눈] "아프단 말도 못하고…" 조현병, 잠재적 범죄자인가
사진 : Freepik.com

■ 치료 기간 평균 1년 6개월.. 전문 인력·지원 부족하다

조현병 환자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전국에는 정신건강증진센터가 200~300개가 있지만 전문의가 일주일에 한 번 센터가 잘 운영되는지 체크하는 것이 전부다.

정신건강증진센터는 병원보다 환자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지만 전문가들이 턱없이 부족해 환자들이 제대로 된 서비스도 받지 못하고 있다. 정신건강전문 요원들이 배치되어 있지만 급여도 적고 비상근에 계약직 등 처우가 부실하다. 계약이 끝나면 해지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또한 한 사람당 70~80명을 관리하는데 인력적인 한계가 있다 보니 제대로 관리가 안 되고 있다.

조현병 환자들은 증상이 나타나서 치료받을 때까지 평균 1년 6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재적 범죄자 영향으로 병원에 가지 못하고 방치되는 환자들도 많다. 병이 심각해진 후에 병원을 찾기 때문에 치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최대 2주까지 단축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비하면 초라한 현실이다.

내달 30일부터는 강제입원 요건과 절차를 강화한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시행된다. 앞으로 정신병원 강제 입원 요건이 입원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경우만 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의료계는 법이 시행되면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 1만 9000여 명 이상이 퇴원해 사회로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광주에서 조현병과 관련한 시범 사업을 하고 있다. 50억 원을 지원했는데 그 효과는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률이 큰 폭으로 줄었고, 환자들의 재입원도 감소했다. 하지만 시범 사업이 끝나 재정적인 지원이 없어 일회성에 그친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꼴이 된다. 효과를 본 만큼 전국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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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병은 불치병 아닌 치료 가능한 병”

현재 조현병에 대한 확실한 원인은 알 수 없다. 다만 스트레스가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라고 추정한다. 특히 가족환경에서 폭력적인 것을 경험하면 조현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최성구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부장은 조현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전문적인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성구 의료부장은 “호주는 병을 예방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 예를 들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경우, 말이나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경우, 갑자기 세상을 보는 태도가 달라졌을 경우 미리 치료에 끌어들여 관리한다”며 “전국적으로 실시해서 효과가 매우 크다는 연구결과 호주 정부에서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고 밝혔다.

혹시 조현병이 발병하더라도 암처럼 초기에 진단하고 치료하면 충분히 나을 수 있다. 최성구 의료부장은 “미국은 전국에 센터를 만들어 청소년들이 조현병에 대한 징후가 있으면 빨리 중재할 수 있도록 팀을 보내 약물치료, 운동, 심리상담, 직업훈련 등 부모와 환자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한다”며 “지난해에는 조현병 관련 법안도 통과시켜 지속적으로 예산을 편성한다”고 말했다.

조현병 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 공포의 질환이 아니라 치료를 하면 충분히 나을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도와줘야 한다. 사회적 약자인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때다.


최성구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부장은 “조현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환자들이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홍보해야 한다”며 “전국에 있는 정신건강증진센터에 전문가를 적극 배치하고 상주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사회적으로 계속 안 좋은 시선으로 보니깐 환자와 보호자들은 힘들어한다. 세상에 어떤 병도 잠재적 범죄자라고 말하는 병은 없다”며 “조현병은 불치병이 아니라 치료 가능한 병”이라고 당부했다.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