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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 안하면 체당금 협조하겠다”악용되는 체당금 제도 구멍 숭숭

임금체불 사업주, 노동자 몫 체당금 전횡 백태
사업주 협조 없으면 어려워 노동청 신고 처벌 요구하면 체당금도 못 받게한다 협박
임금 떼어먹어도 속수무책

#.1 1년째 임금체불 상태인 김모씨(40)는 최근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 사장으로부터 "임금체불로 신고하면 체당금도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회사 직원 17명은 3억원 상당의 임금을 받지 못해 노동청에 신고, 형사처벌을 원했지만 사장은 체당금 협조를 조건으로 이를 막으려 한 것이다. 체당금은 국가에서 체불 노동자에게 3개월 분의 임금 등을 긴급 지원하는 돈으로, 사업주가 주는 게 아니어서 김씨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또 김씨는 체당금을 지급받더라도 밀린 임금 대부분은 여전히 받지 못할 처지다. 김씨는 "그동안 빚만 3000만원이 넘었고 신용등급은 2등급에서 5등급으로 곤두박질 칠 만큼 생활이 무너졌다"며 "국가에서 체당금을 받으려는데 이를 이용해 사장이 재차 협박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 2 제조업체에서 일한 박모씨 역시 5개월간 임금 체불을 겪었지만 사업주 처벌과 임금 일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박씨가 사업주를 노동청에 신고하자 사업주는 "임금은 못주고 체당금을 받도록 할테니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으면 좋겠다"며 "처벌 요구를 하면 체당금까지 못 받게끔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체당금을 받아도 2개월 치 임금을 받지 못하지만 당장 쓸 돈이 없어 사장 말에 따랐다"고 말했다.

“신고 안하면 체당금 협조하겠다”악용되는 체당금 제도 구멍 숭숭


국가에서 운영하는 체당금 제도를 이용, 체불 피해자에게 협박을 가하는 악덕 사업주가 발생하고 있다. 체불 사업주가 피해자에게 형사처벌을 요구하지 말라고 강요하거나 체불 임금을 받지 않을 것을 종용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체당금 지급 과정에서 사업주 협조가 필요한 점을 노려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생계가 어려운 피해자들은 임금체불에 이어 2차 피해까지 겪고 있다.

■사업주 형사처벌 불원 요구도

체당금 지급제도는 정부가 임금 등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사업주 대신 체불 임금(최종 3개월분의 임금, 휴업수당, 최종 3년간의 퇴직금)을 보장하는 제도다. 지급 사유는 사업장 파산선고의 결정, 회생절차개시의 결정, 지방고용노동관서장의 도산등사실인정 등이다. 지난해 정부는 1만 5427개 사업장에 사상 최대규모인 3687억원의 체당금을 지급했다.

23일 체불 피해자,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체불사업주 사이에 피해자에게 체당금 협조를 조건으로 형사처벌에 부(不)동의를 요구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 상 임금체불 사건은 '반의사 불벌죄'(당사자 합의시 처벌하지 않음)다.

김씨는 "사업주가 소개한 노무사를 찾아가니 체당금 협의 조건으로 형사 사건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가 있었다"며 "뭔가 이상해서 다른 노무사를 찾아가니 체당금 협의와 형사 사건은 별개란 것을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사업주들이 체당금 제도를 악용하는 것은 체당금 신청 시 사업주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체당금 지급 과정에서 해당 사업장의 '도산등사실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이때 사업장 매출 자료, 재무제표, 법인세 및 부가세 납부 통지서, 채무관계 현황 정리 내역 등 20여 가지가 넘는 회사 자료가 필요하다. 사업주가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체불 피해자들이 받아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근로감독관이 해당 서류를 조사하더라도 사업주가 도산을 인정하지 않으면 조사 기간이 길어지거나, 지급 신청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높다. 서울의 한 지방노동청 관계자는 "체당금 지급이 적어도 4개월 이상 많게는 1년까지 걸리는 상황"이라며 "근로감독관이 직권으로 조사하더라도 사업주가 도산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비협조적이면 (체당금 인정이) 까다로운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업주가 이과정에서 신청자들에게 (불벌에 대해) 합의를 종용한다던가 하는 것은 편법이고 꼼수"라고 지적했다

■요건 완화, 사후 평가제 도입해야

피해자들이 체당금을 지급 받더라도 이는 체불 임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부 체불사업주는 체당금 협조를 조건으로 나머지 체불 임금을 받지 않을 것을 강요하기까지 한다.
한 체당금 전문 노무사는 "이같이 체불임금을 받지 않기로 강요하는 것 자체가 법 위반"이라면서도 "당장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은 체당금이 급하고, 또 사업장이 문을 닫으면 임금을 받기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임금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체당금 지급 요건 완화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기중 노무사는 "고용노동부가 체당금 지급 요건을 조사하면서 부정수급 가능성 때문에 지나치게 검토를 상세히 하는 면이 있다"며 "체당금 지급 요건을 완화해 임금체불을 겪는 피해자들이 임금을 신속하게 받고 사후 이를 평가하는 제도가 도입돼야 사업주 악용 사례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