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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사법방해죄

1974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으로 탄핵 위기를 맞았다. 탄핵결의안이 하원을 통과했으며 상원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탄핵이 임박하자 닉슨은 스스로 사임하는 쪽을 선택했다. 탄핵의 직접적인 사유는 도청이 아니라 도청사건 수사를 방해한 행위, 즉 사법방해죄였다. 사건 은폐를 지시하고 수사를 담당할 특별검사를 해임하도록 한 것이 정당한 사법절차를 방해했다는 이유였다.

지난 1월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갈수록 닉슨 대통령을 닮아가고 있다. 이번에는 러시아 내통 의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자신과 측근들의 선거기간 중 러시아 내통 의혹을 수사하려 하자 그를 해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는 내용의 메모도 언론에 공개됐다. 탄핵 찬성(48%)이 반대(41%)를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도 보도되고 있다. 마침내 하원에서 탄핵론이 제기됐다. 미 법무부는 여론의 압력을 못 이겨 특별검사를 임명했다. 그러나 탄핵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섹스 스캔들로 탄핵 위기를 맞았다.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불륜을 저지른 것이 문제가 됐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에서 부결됐기 때문이다. 이때도 탄핵 사유는 불륜 자체가 아니라 거짓 증언으로 사법절차를 방해했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정당한 사법절차, 즉 수사의 진행을 막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중대한 범죄로 보고 엄히 처벌한다. 워싱턴DC에서는 사법방해죄가 인정되면 3년 이상 30년 미만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본죄보다 그 죄에 대한 공권력 집행(수사)을 방해한 죄를 훨씬 무겁게 처벌한다. 형식적 제도보다 실질적 사법정의 실현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법방해죄가 따로 없다.
이 때문에 정권이 개입해 수사기관의 정당한 수사를 못하게 막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그런 의혹의 대상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도 포함된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사법방해죄 도입 문제를 공론에 부쳐야 한다. 사법제도가 아무리 잘 갖춰져 있어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