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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소몰이식' 경제 패러다임 바뀔 때

[여의도에서] '소몰이식' 경제 패러다임 바뀔 때


박근혜정부의 '소몰이식' 경제기조가 바뀔 전망이다. 내용보다는 형식에 치우친 탓에 성과보다는 비주얼에 집착했고, 이벤트성 행사에 치중하다보니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에 대기업들이 연루되고, 급기야 탄핵정국과 조기대선을 거쳐 현재는 사법 절차만 남았다. 사실 박근혜정부의 해외순방 때마다 대기업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저항수단이 거의 없었다. 외견상 자발적인 기업 신청을 받아서 경제사절단을 꾸린다고 했지만 청와대의 '영'(令)을 어겼다간 경을 칠 수 있기에 해외순방 때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강제동원되다시피 했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19일 "솔직히 경제사절단 신청을 자발적으로 하기보다는 청와대와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며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해외기업과 국내기업 간 정보교류나 기술교환 수요는 기업 당사자들이 더 많이 알고 교류도 활발하다. 떼거리로 몰고 가서 기업 경쟁력을 키운다는 것은 70~80년대식 패러다임"이라고 지적했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대기업 총수를 대거 거느리고 해외 코리아 세일즈를 나서는지 모르겠다"며 "대규모 경제사절단 동원식 순방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해외순방 때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에 '걸맞은' 상대 국가들의 비즈니스포럼 동원이다. 대통령이 국내기업과 순방 상대 국가들을 연결해주고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한다는 게 경제사절단 구성의 취지였지만 상대 국가들도 영문도 모른 채 자국 내 기업들을 강제로 동원하다보니 우리 측에 항의가 잦았다고 한다. 기업 간 자율적인 정보·기술교류의 장을 과거 산업화 시대의 패러다임을 적용, 오프라인 식으로 짝짓기를 하다보니 보여주기식 이벤트성 행사에 그치곤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히트작이었던 푸드트럭 창업 제안도 처음에는 취업절벽에 절망했던 청년세대들의 새로운 비상구로 여겨졌지만, 영업행위 허용 범위가 한정되는 등 규제완화가 따라주지 못해 올해 2월 말 현재 당초 목표치의 6분의 1가량에 그치는 등 '빛좋은 개살구'로 전락했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수출확대진흥회의'를 벤치마킹했던 '무역투자진흥회의'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지적을 샀다.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관련부처 장관들이 현장에서 직접 민원을 해결해줌으로써 기업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경제계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였지만 일부 대기업의 민원해결 창구나 기업과 권력 비선실세 간 거래창구로 전락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해우소 역할에 그쳐 국민적 공분까지 샀다. 이현출 건국대 교수는 "관 주도의 수출확대정책은 시대에 동떨어진 패러다임으로, 정부는 과도한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도우미 역할에만 그쳐야 한다"고 제언했다.


문재인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고, 여당 실세인 이용섭 전 민주당 의원을 부위원장에 기용한 '일자리위원회'를 통해 규제완화를 비롯해 기업투자 활성화, 근로시간 단축 및 정규직 문제 등 민감한 노사문제까지 다룰 작정이다. 규제철폐나 노사문제를 따로 분리하지 않고, 고용확대라는 대명제를 실현시키기 위해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마스터플랜을 짜겠다는 구상이다. 호기롭게 출발한 일자리위원회가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두고 볼 일이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