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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한·일 과거사 문제의 미래지향적 해법

[여의나루] 한·일 과거사 문제의 미래지향적 해법

이웃한 국가 간에는 서로 툭탁거리는 경우가 많다. 가까이 있다 보니 오갈 일도 많지만, 따라서 싸울 일이 자꾸 생기는 것이다. 물길이 양측을 갈라놔도 매한가지다. 대표적 예로 영국과 프랑스는 도버해협으로 갈라져 있지만 역사적으로 수많은 충돌과 갈등을 겪었다. 국가사회가 민주화되고, 국제사회도 평등한 주권국가 간의 평화공존이라는 이상을 받들면서부터 무력 충돌은 현저히 줄었다. 그래도 오랫동안 서로 장군멍군하면서 싸워온 사이라면 상대방에 대한 경계심과 상대적 우울감 등이 국민 정서 곳곳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도 대한해협이 놓여 있다. 당연히 이 넓지 않은 물길은 양국 간의 왕래를 막지 못했다. 고래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간 것은 문물과 제도가 많았다. 그런데 일본에서 한반도로 온 것들은 어떠했던가? 삼국시대에 서남해안에 출몰한 왜구의 노략질, 막부시대 내부 투쟁을 통해 막강해진 군사력을 배경으로 정명가도(명을 치러 갈 테니 길을 내어달라)를 구실로 일으켰던 임진왜란, 그리고 운양호 사건을 계기로 이어진 강화도의 불평등 조약, 명성황후 시해, 대한제국의 멸망과 36년간의 침탈. 대한해협을 넘어 한반도로 온 것은 장군에 대한 멍군이 아니라 일방적 침략의 연속이었다.

대통령 특사의 일본 방문 결과로서 한.일 간 위안부 문제에 새로운 해법이 나올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 일본의 잘못에 대해 많은 우리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보상 이전에 일본의 진솔한 사죄이다. 이에 대해 일본 측은 "여러 번 사죄했는데 얼마나 더 사과해야 하느냐. 한국사람을 볼 때마다 사과해야 하느냐"는 막말성 푸념까지 들린다. 일본은 1993년 8월 당시 관방장관의 담화를 통해 위안부 모집에 강제와 강압이 있었고 일본 관헌의 개입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과와 반성을 표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1995년 8월 당시 무라야마 총리도 태평양전쟁 시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해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했다. 문제는 이러한 절절한 사과의 뜻이 자라는 세대들에게 역사의 일부로서 가르쳐지지 않고 있고, 또한 일본 사회에 광범위하게 공유되도록 하는 노력이 없다는 데 있다. 그것이 같은 전범국가였던 독일과 다른 점이다. 2015년 8월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는 과거 잘못에 대한 사죄의 표현을 희석시켜 놓았을 뿐 아니라 "이제 일본도 전후 태어난 세대가 전체 인구의 8할을 넘고 있고, 과거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의 아들이나 손자,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도 사죄의 숙명을 안겨주어서는 안된다"라고 했다. 과거의 잘못도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과하더라도 자기 세대에서 끝내고 싶다는 이야기다. 과연 다음 세대에게 사죄의 숙명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옳을까. 해답은 사죄해야 할 만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한.일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한 미래지향적 해법은 과거는 과거로 흘려보내자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과거의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하는 한편, 미래를 향해 상호 협력하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 아베 총리가 총리가 되고 얼마 후 미국의 맥그로힐사가 출판한 미국 고교 역사교과서에 실린 위안부 부분을 삭제하고자 시도했던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었다.
물론 이 시도는 실패했지만, 이런 자세는 과거의 수치를 반성하지 않고 덮어버리자는 것으로서 위험한 발상이다.

일본은 기왕에 발표됐던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와 같은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서를 기록으로만 보유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를 교과서에 게재해 역사의 한 부분으로서 후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반성하지 않는 잘못은 언제라도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훈 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