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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부곡하와이

"신혼여행은 하와이나 가려 해." "정말? 야, 대단하네." "응, 하와이는 하와이인데 부곡하와이야." "허허, 나도 이번 휴가에는 와이키키나 가야겠다. 수안보와이키키." 1980년대에 나돌았던 싱거운 농담이다. 1987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전에 미국 하와이는 꿈에서나 가볼 수 있는 천국이었다. 경남 창녕 부곡온천지대에 들어선 한국 최초의 워터파크가 '하와이'란 엉뚱한 이름을 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곡하와이는 산업화시대에 쉼없이 일만 해야 했던 이들이 하와이처럼 선망했던 휴양지였다.

1979년 개장한 부곡하와이는 창녕 출신으로 일본에서 파친코로 갑부가 된 재일동포 기업인 배종성 회장(작고)이 세웠다. 46만여㎡ 땅에 국내 최고인 78도의 온천수와 대규모 물놀이시설, 식물원, 놀이동산, 공원, 호텔을 갖춘 종합리조트였다. 유명 가수들과 화려한 외국 댄서들의 공연을 보면서 한가로운 만찬을 즐기다보면 하와이 와이키키에 온 듯한 이국적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부곡하와이는 신혼여행지뿐 아니라 학생들 수학여행지로, 휴가철 피서지로 인기를 누렸다.1980년대에 한 해 250만명이 찾을 정도였다. 30.40세대에는 어린 시절 물놀이의 즐거움이, 50.60세대에는 허니문의 낭만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아버지를 따라 부곡하와이를 찾은 어린이가 성장해 아들딸 손을 잡고 다시 가족휴가를 가는 사례도 많다.

이런 부곡하와이의 영화도 1990년대 후반부터 저물었다. 1996년 용인 에버랜드에 캐리비언 베이가 들어선 이후 전국 각지에 첨단시설의 워터파크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경쟁력이 추락했다. 지난해 이용객은 한창 때의 10분의 1 수준인 24만명에 그쳤다. 노후시설을 업그레이드하고 서비스를 현대화할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부곡하와이가 100억원에 달하는 누적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 28일 폐업을 선언했다.

수많은 사람이 인터넷과 SNS에서 추억이 깃든 국민휴양지 부곡하와이의 퇴장을 안타까워했다.
부곡하와이는 곧 매각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그러나 누가 인수하든 부곡하와이는 업종 전환 등 획기적인 변신이 불가피하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