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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시급 1만원, 일자리 킬러?

지금도 최저임금 부담된다며 아파트 경비 줄이는 판에 왕창 올리면 어떻게 될까

[곽인찬 칼럼] 시급 1만원, 일자리 킬러?

내가 사는 아파트는 오래된 아파트라 경비 초소가 따로 있다. 두 분이 2교대로 돌아간다. 밤을 꼬박 새우고 하루 쉰다. 좁아터진 경비실에서 나이 지긋한 분들이 쪽잠을 자는 모습을 종종 본다. 여느 아파트처럼 주민은 상전이다. 아들뻘 젊은이가 이래라저래라 해도 꾹 참아야 한다. 몸은 힘들고 속은 곯지만 그래도 경비원들에겐 소중한 일터다.

얼마전 단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공문이 왔다. 현관을 자동문으로 바꾸겠으니 찬반 의견을 달라는 내용이다. '통합경비시스템 구축(안)'을 보니 자동문으로 바꾸면 경비원이 반으로 준다. 공지문엔 현행 경비제도가 가진 몇 가지 문제점이 적혀 있다. 첫째가 '매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입주민 부담 가중'이다. 최저임금이 최근 해마다 7% 넘게 올랐다는 설명도 달렸다.

경비원한테 주는 돈이 얼마나 되길래? 총 관리비 가운데 3분의 1이 경비원 급여다. 자동문 설치비가 비싸지 않을까? 몇 억 들지만 길어야 2년이면 본전이 빠진단다. 고민이다. 찬성할까 반대할까. 효율성만 따지만 찬성이 옳다. 그럼 일자리를 잃는 경비원들은 어떡하나.

다른 아파트들은 어떤가 살펴봤다. 사실 내가 사는 곳은 자동 시스템 전환이 늦은 편이다. 다른 데는 벌써부터 바꿨다. 2015년이 분기점이다. 이때부터 아파트 경비원한테도 최저임금제가 적용됐다. 그 전엔 예외였다. 최저임금을 받으면 일자리가 떨어져나갈까봐 경비원들 스스로 최저임금을 밑도는 급여를 받았다. 그러나 예외를 무한정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파트마다 자동문을 다는 붐이 일었다. 새 아파트는 예외없이 무인경비 시스템이다. 오래된 아파트들도 서둘러 교체에 나섰다. 자동문을 달지 않은 아파트들도 그냥 있지 않았다. 쉬는 시간을 늘리는 편법으로 경비원 급여를 줄였다. 전국에 아파트 경비원은 약 4만명으로 추산된다. 평균 나이는 60대 중반이다. 다들 일자리가 언제 끊어질지 몰라 조마조마하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최저임금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오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시급)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2017년 시급은 6470원이다. 약속을 지키려면 지금보다 50% 넘게 올려야 한다. 올리는 것도 쉽지 않지만, 설사 올린다 한들 과연 아파트 경비원들이 박수를 칠까.

문 대통령은 지난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라며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다시 찾아뵙겠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 '노무현 시즌2'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참여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노무현정부는 이상은 높았지만 힘은 부족했다. 현실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문 대통령 스스로 내린 평가다. 최저임금 1만원은 이상이다. 새 정부는 이를 관철할 힘이 있을까. 자동문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진보의 역량은 9년 만에 다시 시험대에 섰다.

잘 아는 교수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진보정권이 보수 정책을, 보수정권이 진보 정책을 펼 때가 가장 좋다고. 공감한다. 영국 토니 블레어 전 총리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모델이다.
참고로 난 자동문 교체에 반대다. 그냥 지금처럼 경비원들과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지내는 게 좋다. 그러나 결과는 장담 못하겠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