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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총리·장관 인준, 역지사지 자세로 풀라

易地思之
靑, 공약위배 양해 구하고.. 野, 현실적 기준 수용해야

30일 취임 21일째를 맞는 문재인 대통령의 새 정부가 암초를 만났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신임 각료들이 위장전입 논란 등 크고 작은 하자로 인사검증의 허들을 넘지 못하면서다. 가뜩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계속된 국정 공백이 길어지고 있어 사태는 자못 심각하다. 부디 여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새 내각 구성 문제에서부터 협치의 첫 단추를 잘 채워야 할 것이다.

인사청문회로 인한 조각 진통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역대 정부 임기 초마다 봐온 데자뷔다. 야당은 각료 후보들의 도덕성에 대한 현미경 잣대를 들이대고, 여당은 국정 능력이 우선이라며 방어막을 치면서다. 이번엔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병역면탈.부동산 투기.탈세.위장전입.논문표절 등 5대 고위공직 배제 원칙'을 밝힌 통에 더 꼬였다. 이 총리 후보자에 이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위장전입 전력이 드러나면서 그 약속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형국이다.

이런 5대 원칙을 문자 그대로 적용할 경우 새 정부의 조각이 더 지연될 게 뻔하다. 이로 인한 피해는 국민 전체가 감수해야 한다. 이를 막으려면 청와대 측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야당 측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본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은 그래서 부적절했다. 그는 "(우리는) 야당 시절 하나의 흠결만으로 총리 인준에 반대하지 않았다"며 야당 측을 겨냥해 "정략적"이라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이 총리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이 위장전입 말고도 전남지사 경선 때 당비 대납 의혹 등 여러 건이 아닌가. 사실관계부터 틀린 '내로남불'의 자세로는 문제가 풀릴 수 없다.

그렇다고 위장전입 등 5대 기준에서 하자가 전혀 없는 인사 중에서 능력을 갖춘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게 현 여당만의 한계일까. 아니다. 현 야당 집권기인 이명박.박근혜정부 때도 총리나 장관 후보 다수가 위장전입 등 각종 의혹과 함께 낙마하거나 곤욕을 치렀지 않나. 이런 제한된 인재풀은 굴곡의 현대사를 함께 살아온 국민 모두의 불행일지도 모르겠다.

이대로라면 다음 정부 때도 똑같은 소모적 진통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26일 한 여론조사(리얼미터)에서 이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70%를 넘어선 건 뭘 뜻하나. 차제에 여야가 합심해 출구를 찾으라는 민심이다. 마침 29일 문 대통령이 이 총리 후보자 문제에 대해 야당의 양해를 구하고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2005년 7월 청문제도 도입 후 위장전입자 공직 배제 등 새 인사기준을 제시했다. 여야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뒤집히지 않을 인사기준에 합의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