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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알파고는 야구감독이 될 수 없다

야구는 집단 관계의 대결.. 통찰력에선 따라올 수 없어

후지사와 슈코는 67세에 일본 프로기전 우승을 차지했다. 46세에 마스터스 골프 대회 우승을 이룬 잭 니클라우스의 기록보다 더 위대하다. 창의력과 지력, 체력이 뒷받침된 노익장의 쾌거였다. 둘 다 역대 최고령 기록이다.

후지사와는 조훈현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원래 스승은 세고에 겐사쿠지만 후지사와에게 더 많이 배웠다. 후지사와는 52세에 일본 최고 기전인 기성전에 우승한 다음 6연패했다.

그는 생전에 "바둑의 신과 대결하면 몇 점이면 되겠냐"는 질문을 받았다. 후지사와는 두 점이면 충분하다고 답했다. 잠시 있다가 "목숨을 걸고 두라면 석 점"이라고 고쳤다. 석 점이면 상대가 신이라도 이길 수 있다는 호언장담이었다.

그의 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성(棋聖)이니까. 하지만 알파고의 등장 이후 사람들은 후지사와의 말을 믿지 않게 됐다. 최근 중국 바둑기사 커제를 꺾은 알파고는 지난해 이세돌과 대결한 알파고보다 세 배나 강해졌다고 한다. 둘이 대결하면 석 점 상대라는 말이다.

즉 현재의 알파고는 이세돌이나 커제와 석 점을 접고 붙어도 이길 수 있다. 물론 대결은 성사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계 제일의 고수가 그런 수모에 동의할리 없다. '심장이 없는' 알파고라면 혹 모를까.

만약 알파고가 야구감독이 되어 인간 야구감독과 대결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대 야구는 데이터 야구다. 타자의 스윙 각도와 파워, 성향을 면밀히 분석해 수비 위치를 정한다. 투수는 어떤 코스에 약점을 지녔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고 타자를 상대한다. 그렇다면 알파고 감독이 이기지 아닐까. 인간이 연산 능력에서 도저히 알파고를 능가할 수 없으니.

하지만 야구는 바둑과 다르다. 바둑은 한 개인과 개인, 혹은 개인과 기계가 대결을 벌인다. 야구는 집단과 집단, 즉 관계의 대결이다. 인간관계를 이해하지 않는 이상 야구 감독을 할 수 없다. 야구 감독이 가르치는(coach) 사람이 아니라 경영하는(manager) 사람으로 불리는 이유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의 한 연구원도 "인공 지능이 엄청난 연상 능력을 지녔지만 통찰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에선 인간에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알파고는 야구의 작전을 다양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프로야구 초창기만 해도 히트앤드런은 '타자 유리' 상태에서 거는 작전으로 알려졌다. 가령 볼카운트 0-2(투볼 나싱) 같이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백인천 전 LG 감독은 '타자 불리' 상황서 자주 이 작전을 들고 나왔다.

볼카운트 1-2에서 투수는 바깥쪽으로 흐르는 공을 던져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려 든다.
바깥쪽 공은 툭 건드려 2루 쪽으로 밀기 쉽다(우타자의 경우). 도리어 히트앤드런을 걸 카운트라는 것이 백 전 감독의 설명이다. 알파고라면 이런 변화들을 다양하게 이끌어 낼 것이다. 하지만 결코 야구 감독은 될 수 없다.

texan509@fnnews.com